왜 일상은 여행처럼 안 살아지는 거야?

작은여행 다녀오겠습니다

by 보리차

나에게도 포틀랜드가 여행지였던 시절이 있다.

가고 싶은 카페나 행사를 미리 구글링 하고

동선에 맞추고 시간을 쪼개던 추억.

이제는 파머스 마켓도 더 이상 설레지 않고

동네에서 열리는 나이트 마켓도 시시하다.

누군가에겐 여행지인 곳이 삶의 터전이 되니까

이렇게 급속도로 사랑이 식는 걸까?

왜 일상은 여행처럼 안 살아지는 걸까?


그런 것들에 무뎌지면서 점점 집순이가 되어 갔다.

외톨이들은 사람들 많은 곳에서 혼자를 느끼는 것도 좋아하지만

집안에 틀어박혀 아늑하게 혼자를 실감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느 날 우연히 여행 이야기를 하는 팟 캐스트를 듣다가

커피여행으로 포틀랜드가 나왔다.

반가워서 귀를 쫑긋 세웠다.

포틀랜드를 정말 사랑하는 김민철 작가가 카페를 추천해 줬다.

작가님의 생생한 설명에 빠져들어서 도저히 안 가볼 수가 없었다.

덕분에 무기력을 깨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카페의 시그니쳐 에스프레소 플라이트를 시켰다.

플라이트는 맥주 샘플러처럼 에스프레소를 조금씩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메뉴였다.

여행 온 것처럼 겉멋을 부리며 두 개를 시켰다.

스털링 카페

위스키 잔에 에스프레소가 나오는데 그걸 집어 드는 촉감부터가 낯설었다.

그 세트에는 탄산수가 함께 나오는데

마치 그 존재가 더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맛보기 위해 쉬어가는 휴식 같았다.

그런 조합은 처음이었고 신선했다.

오히려 에스프레소 보다 탄산수라는 브레이크가 나를 압도했다.


늘 변화의 계기는 여행 속에 숨어 있는 것 같다.

오늘 카페로 떠난 작은 여행에서 어떤 계기를 얻었다.

커피를 한 모금씩 맛보면서

다시 입안을 정리해주는 탄산수의 존재가 날 바꾸어 놓았다.

그 쉬어가는 느낌이 요상하게 상쾌해서

평생 쉬어본 적 없는 위에게 휴가를 주기로 했다.

간헐적 단식을 결심했다.

옆에서 누가 아무리 부추겨도 전혀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는데

이 플레이팅에 딸려 나온 탄산수를 보고

나도 모르게 16시간 공복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산수는 에스프레소를 더 맛있게 해주는 조력자였다.

공복 유지 역시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준비 운동이다.

어쩌면 최고의 식사를 위해 내가 내 몸에 선사하는 최고의 예우이다.

최근 ‘처음 가보는 곳’에 굶주려 있었다.

일상을 깨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걸 맛보는 기분, 정말 오랜만이었다.

누군가는 휴가를 내서 찾아오는 관광지에 나는 살고 있지만

그런 텐션은 계속 유지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내게 무기력이 덩그러니 자리 잡았다.


처음 가보는 카페에 잠시 들렀다고

오늘의 내 기분, 내 오후도 달라졌다.

매일 가기 싫은 짐이 조금 덜 가기 싫어졌고

진짜 가기 싫다는 남편을 따돌리고 혼자 운동을 하러 갔다.

운동을 하면서도 그 탄산수가 계속 떠올랐다.

오늘 했던 작은 여행을 계속 음미하고 있었다.

그 여운이 운동하면서도 계속 잔잔히 남아 나를 들뜨게 했다.


생각의 결도 달라졌다.

늘 의문이었다.

여기서 일하는 스텝들은 sos해상구조대 처럼 뭔가 달랐다.

전략적으로 채용한 느낌이 들었다.

수건을 정리하고 샤워장에 샴푸를 채우는 일을 하는데

그들의 몸짓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더 운동하고 싶어 진다.

순간 ‘우린 매일 운동하는 몸이야 보고도 몰랐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매일 봤지만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그 수수께끼를 푼 것 같다.

이곳의 스텝들은 회원권을 끊지 않고도

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이 있음이 틀림없다.


그들은 모두 근육을 가지고 있었고

오랫동안 쌓아온 운동의 흔적이 몸에 있었다.

매일 그들은 몸의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오늘부터 간헐적 단식을 할 생각에 조금 신이 났다.

탄산수에서 영감을 받은 내 몸의 변화가 궁금해진다.


왜 일상은 여행처럼 안 살아지는 걸까?

일상을 여행처럼 살면 큰일이 날 것 같다.

계속 여행 중이라면 그 여행의 여운을 즐길 일상이 없어져 버린다.

단짠단짠 처럼 달콤함이 있으면 뒤에 짠맛이 와야 균형이 이뤄진다.

여행과 일상, 그 균형감이 생길때 인생은 완벽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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