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의 천재
얼마 전 유퀴즈에 나온 손 모델이 쓰는 손세정제가 화제가 되었다.
그걸 쓰면 확실히 덜 당기고 손 관리하기 좋은 제품이라
그 모델이 직구를 해서 꾸준히 쓰는 제품이라 했다.
나도 눈길이 갔다.
다 알면서도, 또또또 왜 저걸 쓰면 나도 저런 손이 될 것 같은지...또 이렇게 영업을 당하는 내가,
마케팅의 노예인 내가 싫다.
SK2 노예로 산지 언 20년,
사악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피테라라는 것에 꽂혀 썼다.
방사능 논란, 일본 불매 운동도 겪었지만
그 스킨에 대한 사랑이 워낙 컸기에 내 청춘을 함께 한 제품이다.
궁핍한 시절에도 그것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케이스병만 봐도 그 시절 내 안간힘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정말로 비싼 화장품은 효과가 있는 걸까?
실제로 라메르와 니베아의 성분이 비슷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효과를 확인해보기 위해 영국의 한 기자가 실험을 해봤다.
20만 원과 3천 원의 대결이다.
4주간 얼굴에 각각 다른 화장품을 바르고 피부 상태를 측정했다.
(실제 항공 우주국에서 우주비행사들의 피부 상태를 점검하는 기계)
즉각적 붉은 기 진정효과는 라메르가 빨랐지만
니베아가 수분 보존력이나 주름개선 효과가 높았다고 했다.
진짜 난 호구였던 걸까? 비싼 화장품이 진짜 다 이런 걸까?
당했다 라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화장품 천국인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미국산 화장품으로 바꿨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에 있다는 위치를 잡아낸 AI가 나에게 뿌린 어떤 광고.
나는 그걸 보고 다시 SK2와 재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케팅의 호구가 되어도 상관없다.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나는 내 영혼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미국 와서 놀란 건 광고에 등장하는 자신감 넘치는 뚱뚱한 여자다.
주근깨도 예쁘고 까만 피부도 예쁘다.
한국에서 보던 화장품 모델은 피부가 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죄다 가녀린 여자들이었다.
그런 여성들이 아름다운 거라 생각되게 만들었다.
저런 것만 보고 자라는 내 조카는 어쩜 좋지 싶다.
“여자는 하얘야 해, 피부가 생명이야.”
저런 말을 달고 다니는 내 친구, 이 시대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산부인과를 안 가서 자기 몸에 자라는 종양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얼굴에 작은 뾰루지가 나면 난리를 치며
피부과는 열심히 다니는 인간들이 우리였다.
SK2 스킨을 바르는 시몬 바일스의 광고를 보자
그녀의 점프를 처음 봤을 때 돋았던 소름이 쫙 돋았다.
너무 좋아서 다시 돌려봤다.
사악한 가격 다 잊을 만큼 매료되었다.
나는 더 이상 하얀 피부는 갖고 싶지 않다.
시몬 바일스의 정신을 갖고 싶다.
스킨을 바를 때마다 그 정신을 가다듬고 싶다.
그래서 다시 SK2를 사서 쟁인다.
시몬 바일스는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선수에게 붙이는 워딩
“역사상 최고 (G.O.A.T. Greatest Of All Time)를 획득한 선수다.
“흑인은 뛰어난 체조 선수가 될 수 없다,”
142cm의 키로 오랜 편견을 이겨냈고
부모의 마약중독으로 의붓 할머니, 동네 체조 코치가 키워낸 흑진주다.
누군가는 그녀를 이렇게 기억하겠지만
나는 손절의 천재로 기억하고 싶다.
리우 올림픽 4관왕인 그녀는
이번 도쿄에서 용기 있는 결정을 한다.
트위스트로 인해 기권을 택했다.
트위스트는 갑자기 몸의 감각과 통제를 잃게 되는 현상인데
경기보다 중요한 건 정신건강이라는 걸 보여줬다.
예전엔 이런 부상 같은 걸 참아내고
끝까지 경기에 임하는 걸 당연시 여겼다.
자기 자신을 잃으면서 까지 얻으려는 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런 징그럽고 야만적인
시대도 있었다.
‘때로는 우리의 NO가
우리의 YES보다 더 강력하다.’
그녀의 선택에 저스틴 비버가 SNS에 남긴 글이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냐
손절의 아름다움,
나는 그 스피릿을 기억하고 싶다.
나는 SK2를 바르면서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자’ 리추얼을 만들게 됐다.
그녀가 기권을 택했듯이 나는 무엇을 손절할 것인지 매일 생각한다.
하얀 피부가 아닌 난 저 매력 넘치는 정신을 소유하고 싶은 거다.
SK2가 내 하드웨어인 피부를 얼마큼 바꿔주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내 소프트 웨어는 확실히 업그레이드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