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차 Feb 05. 2022

팬티가 작아져도 이건 포기 못해

좋든 싫든 남편은 내 베프


“내가 선물하나 줄게”

“(지난번처럼 현금인 줄 알 구 잔뜩 기대) 뭔데? “

남편은 내가 읽던 책에 코딱지를 올려놓고 도망간다.

“야!!! 똥쟁이 일루 안 와?”

나는 끝까지 따라가서 그 코딱지로 응징한다.

근데 이거 유치원생들이 하는 놀인데?

마흔 넘은 성인 두 명이 이러고 놀다니 싶다가도

생각해보니 난 누구랑 이러고 논적이 없다.

‘이렇게까지 친해진 사람이 있었나?’

이방인으로 살다 보니 부부이지만 베프이기도 하다.

특히나 우리처럼 원래 친구가 적은 인간들에겐

서로가 서로에게 1인 다역 친구가 되어 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린 서로에게 여러 개의 캐릭터와 별명이 있다.


우린 서로의 빨간 팬 선생님이다.

스키장에 가려고 장갑을 사러 갔는데

“현진이 멍청이 장갑 좋아하지?”

남편은 벙어리장갑을 그렇게 말했다.

머릿속엔 어렴풋이 벙어리로 남은 단어가 입으로는 그렇게 튀어나오다니

그 간극이 너무 웃겼다.

“손 모아 장갑이라고 하는 거야”

나도 최근에 넷플릭스 자막을 보고 알았다.

벙어리장갑이 아닌 손 모아 장갑이라는 단어를


남편은 초딩때 이민 와서 한국어가 서툴고 나는 영어가 많이 서툴다.

바로 옆에 서로의 언어 선생님이 있어 계속 공부해 나간다.

그런데 가끔 남편이 구사하는 모국어가 너무 사랑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인데

 ‘어 이 말 너무 예쁘잖아? 앞으로는 이렇게 말해야지’싶을 때가 있다.

서점을 책방이라고 한다거나 엉덩이는 꼭 궁뎅이라고 한다.

나는 보통 '감사합니다'를 쓰는데 남편은 '고맙습니다'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내가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적은 태어나서 거의 없다.

분명 비슷한 말인데 왠지 '고맙습니다'는 영어에서 땡큐가 아닌 어프리시에잇 같이 느껴진다.

마음을 표현하는 말의 감촉과 결, 최선을 다해 가장 가까운 것을 고르고 싶다.


영어 때문에 빡치는 순간들이 아직도 종종 있다.

아직이 아니라 종종이 아니라 아마 영원히 영어와 싸워야 하는 걸, 슬프지만 확신하고 있다.

그때마다 이건 남편도 지난 온 길이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다 가끔 귀가 조금씩 뻥 뚫리는 순간 그 즐거움에 신이 난다.

이건 남편도 지나온 똑같은 길이다.

같은 길을 걸었던 남편이 앞에 있으니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이해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담배 쟁이지만 똥쟁이라 부르는 이유

남편을 똥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는 밥 먹으면서도 똥 이야기를 할 정도로 똥이 중요한 인간들이기도 한데

어른이 되면 똥 싼 걸로 칭찬받을 일이 없다.

아기 땐 그냥 똥만 싸도 “아이고 잘했어.” 하고 찬사를 받는다.

그 순수한 사랑을 무한대로 받는 구간에 머물고 싶다.

그 맹목적인 무한대 사랑을 퍼붓고 싶은 마음에서 똥쟁이라고 부른다.

그래서일까? 자는 것도 신생아처럼 너무 귀엽다.

담배 쟁이가 자고 있는 게 팩트지만 내는 똥쟁이가 자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흰머리가 희끗하고 팔자주름이 깊게 파였지만 내 눈에는 갓 태어난 신생아 같다.

자고 있으면 혹시라도 깰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하지만

신생아가 신나게 코 골며 잘 땐 장난치고 싶어 미치겠다.

“우리 남편은 신생아처럼 자.”

내가 궁금한 건 아직 내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이러는 건지

언제부터 이 콩깍지가 벗겨지는 건지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시스타는 날 미친 사람 취급한다.

남들이 뭐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만 좋다면 얼마든지 이래도 좋지 않을까 싶다.

똥쟁이로 그냥 까불어 재끼기만 해도 충분하다.

다른사람을 만나 똑똑하게 잘 살수도 있겠지만

나는 똥쟁이 옆에서 바보가 되는 걸 선택했다.


이방인들이 부부싸움을 못하는 이유

일년에 무려 3개국을 이사다니는 이방인 부부가 있다.

즐겨보는 유트브인데 그걸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이방인의 생활이 설레는 모험처럼 느껴진다. 늘 에너지넘치는 그들이 최근 셋째를 임신했다고 소식을 알려

감탄했다.

“평소에 부부싸움은 안 하시나요?”

큐앤에이편, 가장 궁금한 질문에 대답을 했다.

“저희는 싸운 적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게 말이 되냐고 의심하겠지만

나는 그다음 말을 듣고 백 프로 공감했다.

“이미 너무 많은 것들과 싸우고 있어서 부부싸움까지 못해요.”

진짜 그런 것 같다. 이방인의 삶엔 부부싸움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우리도 이미 경험하고 있는 부분이기에

저 사람들도 서로에게 다정한 친구가

되어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도 남편이 주장하는 바 우리는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다.

나는 담배로 싸웠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결국 나 혼자만의 하드코어 살풀이였고

남편은 내가 건 싸움을 받아주지 않았다.

싸움이란 두 사람 쌍방이 허락해야 생긴다.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받아주지 않으면 싸움이 일어나지도 않는다는 걸 알았다.


두 개의 언어를 써야 하는 고단함

명절이 다가오면 왠지 모를 죄책감과 그리움

말만 들어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세금 문제

교통사고 내고 잠적해버리는 상대방

두 다리를 뻗고 자는데도 왠지 모를 피곤함과 불안함

아무리 충전해도 완충이 되지 않는 배터리와 동질감

나보다 늦게 온 백인의 음식이 먼저 나와서 열 받다가 계산할 때 직원이 실수해서 미안하다고 맥주 가격을 빼줘서 기분이 누그러지고야 마는 구린 상황과 쓸데없는 노파심

오늘 엉엉 울어도 인스타에는 예쁜 사진을 올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문득 다 집어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빡치는 마음

김치찌개에 밥 말아먹으면 분명 기운이 나는데 그것조차 입에 안 들어가는 날

터무니없이 비싼 한인마트에서 사 온 들기름이 유통기한이 지났을 때


팬티가 작아져도 이건 포기 못해

생각나는 걸 써내려 가다 보니 진짜 우리는 이미 수많은 것들과 싸워고 있다.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남편에게 나 자신에게

조금 다정한 친구가 되고 싶다.

요즘엔 그 다정함이 지나쳐서 큰일이다.

눈앞에 있는 케이크를 모조리 먹어치워 팬티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리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이거 끝나고 케이크 먹으러 가야지”

하며 나를 달래지 않으면 오늘치 영어 숙제를 도저히 끝낼 수가 없는 그런 인간이다.

지금은 케이크로 나를 유인해서 영어를 공부하고

좀 이따가는 그 출렁이는 뱃살을 이고 지고 러닝머신에 나를 올려놓는다.

이 모순이야말로 부부싸움이 파고들 틈 없는 이방인다운 지점이다.

이전 15화 맛없는 커피를 먹기엔 인생이 너무 짧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