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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Jul 18. 2022

미국 병원 응급실에서 피크닉 해본 사람?

미국 병원 뺑뺑이를 당하면 생기는 일


남편이 너무 아프다며 울면서 응급실로 뛰어갔다.

응급실 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미국은 악명 높은 병원비 때문에

진짜 죽기 직전이 아니면 어지간하면 응급실을 가지 않는 게 국룰이다.

아마도 남편은 ‘아파서’ 죽기 직전이 아니라

미국 의료 지옥에 ‘분노해’ 죽을 거 같아서 간 것 같다.

응급실에 가서도 하루 종일 기다릴 것을 몰랐기에 갔을 것이다.


미국의 의료 지옥은 말로만 들은 적이 있지 오롯이 남의 이야기였다.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직접 걸어 보는 건 천지 차이라고 했다.

진짜 살아보니 미국 병원은 정말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든다.

어제 <미준모>에 올라온 글을 보고 우리만 돌아버리는 건 아니구나 하고 위안이 되었다.

(*<미준모>:미국과 관련된 한인 커뮤니티 카페)

정말 아파서 죽을 거 같은데 전문의를 만나는 게 6개월 후에 가능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예전 같았으면 ‘설마?’하고 의심했을 텐데

내가 직접 겪고 나니 이건 생생한 진실이고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남편은 봄부터 시름시름 목이 아프다고 했다.

그 당시 이렇게 오랫동안 병명도 모른 채 병원 뺑뺑이를 당할 줄 알았다면

가산을 탕진해서라도 한국으로 바로 갈걸 그랬다.

한국에선 하루 만에 가능한걸 미국에선 몇 달이 흘러도 불가능했다.

처음 이비인후과 진료를 예약하고 의사를 만나기까지 2개월

그 의사가 다른 과로 가서 하라고 한 검사 위내시경, 폐시티 등등을 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각각 두 달씩, 그리고 아직 목 초음파는 받아보지도 못했고 몇 주 뒤에 예약이 되어 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에 탄 기분

병명을 모른 채 끙끙 앓는 건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어디서 물이 새고 있는지 전혀 알길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현악 연주자들은 침몰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다.

계속 연주를 한 것이다.


응급실에서 3시간 정도 기다려 진이 빠진 남편은 정신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한국처럼 간단한 스낵을 사 먹을 곳도 없는 미국 병원이었다.

남편의 전화를 끊고 나도 모르게 서둘러 도시락을 쌌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꽃게 된장국을 끓여 응급실로 갔다.

냄새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남편이 좋아하는 것’ 그 생각뿐이었다.

타이타닉에 탄 연주자처럼, 그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랑하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응급실 주차장에서 피크닉을 하게 됐다.

응급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좋아하는 걸 먹다니

이 순간을 가장 럭셔리하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죽을지는 몰라도 우리는 분명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병원 못가서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 오늘 하루 여한없이 보내고야 말겠어!’

이방인인 주제에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

그게 뭔지 생생히 실감했던 날이였다.

미국에 살다 보니 스님이 되어버렸어

“우리 그냥 한국 가서 살자.”

아파서 죽을 거 같은 남편도 그 순간만큼은 웃었다.

“여기서 사나 거기서 사나 우리 어차피 결국 죽어. 그리곤 흙으로 돌아가지.”

가끔 나도 내가 스님 같은 소리를 해서 놀라곤 한다.

해외살이를 하다 보니 예상을 뛰어넘는 말도 안 되는 일에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럴 때 아무도 구해줄 사람은 없다.

내가 내 스스로 나를 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나는 스님이 되어갔다.

마음을 돌보고 영혼을 가다듬는 전혀 티가 나지 않는 그 일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얻은 별명이 차차 스님이다.


스님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미국 의료 지옥을 겪으면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기에

오히려 그 전과 달리 더 큰 감사를 느끼며 사는 인생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아프면 당연하게 바로 병원을 갔고 쾌적한 서비스를 받았다.

그게 한국의 선진 의료 시스템인지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이 의료 지옥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애초에 한국 같은 의료천국을 모르니까 그냥 살아가는 거겠지?

에어컨이 개발되기 전 사람들이 무더위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혔듯이

그냥 자연스레 살아가는 걸까?

그렇다면 한국이냐 미국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자신이 선택한 곳에서 스며들듯이 살아가면 된다.



생각이 아닌 느낌!

응급실에서 6시간을 기다린 남편은 겨우 피검사를 받고 항생제를 처방받아 나왔다.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허망했다.

제발 병명이라도 알고 싶어 우리는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러곤 그날 밤 너무 설레어서 한숨도 못 잤다.

맞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그런데 역시 사람은 미친 짓을 해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같다.

코로나의 재유행과 극 성수기에 갑작스러운 한국행.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생애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진귀한 경험을 한다.

비행기 표를 끊은 그날을 기점으로 남편의 통증이 서서히 사라졌다.

“거짓말 아니야? 몇 달 동안 아프던 게 갑자기 싹 나을 수가 있어?”

때론 인생에서 논리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그럴 때야 말로 생각이 아닌 느낌대로 가야한다.

“근데 그거 알아? 표 취소하면 다시 아플지도 몰라.”


인생에서 번지르르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향해 죽기 살기로 달리는 게 이젠 부질없이 느껴진다.

그것보다 그때그때 내 자신의 느낌에 따르는 게 더 소중하다.

내 영혼의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하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차차스님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쿠팡을 뒤져 목탁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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