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차 Jan 16. 2022

맛없는 커피를 먹기엔 인생이 너무 짧아

커피 구독 서비스 노예

그렇게 커피 구독자가 된다.

그 많던 스타벅스는 왜 문을 닫았을까?

대낮에 스타벅스를 갔는데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무슨 일이지 싶어 바로 옆 매장을 가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엔 일할 사람이 없어서

중심부에 있는 매장 말고는 문을 닫아야 할 처지라고 한다.

서울에서는 아직도 스타벅스엔 앉을자리가 없는데

이게 머선일이고?


더 혼란스러운 건 동네 빵집에 갔는데

커피 한 달 구독자 모집 광고를 대대적으로 붙여 놨다.

커피 무제한이 한 달 단돈 만원이라니 내 눈을 의심했다.

‘이건 세잔 만 마셔도 완전 개이득이잖아?’

미국엔 한 달 무제한 영화관도 만원인 서비스가 있다.

그들이 열심히 머리를 굴린 결과 이렇게 하는 게

더 많이 남으니까 하는 거겠지만

아니 이건 무슨 자신감이지 싶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넷플릭스처럼 첫 달 한 달은 무료란다.

호기심 만수르급인 나는 냉큼 구독을 했다.

여기서 나란 인간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했다.

최근 커피를 줄이겠다고 선언하고

아마존으로 유럽 보리차를 대량 구매한 인간이 바로 나다.

그런데 한 달이 공짜라니 일단 한번 구독해 보자고~

마케팅 잘하네? 이런 알량한 인간도 나다.

분명 한 달 구독을 하면 그 커피 마시겠다고

자주 들락거릴 테고 그 빵집의 빵에 눈먼 돈을 쓰게 되어버리겠지만

왠지 무제한 커피라는 말은 기분이 좋다.

그렇게 나는 <언리미티드 커피 클럽> 1일차 회원이 되었다.


자기만의 카페가 생기다


이 커피 구독 서비스는 분명 내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듯했다.

내게 자기만의 카페가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딱 믿어버렸다.

언제든 올 수 있고 자유롭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편안한 곳.

나는 자기만의 방이 있지만 밖으로 나와야 에너지가 생겨버리는 인간형이라

자기만의 카페가 절실했다.

그 로망이 클릭 한번으로 단박에 이뤄졌다.

김밥천국처럼 여러 개 시켜 먹기 편한 메뉴도 다양해 만만한 빵집이다.

그런데 구독 첫날 공짜라서 그런 걸까?

커피가 너무 맛이 없었다.

예전에 커피 맛을 전혀 몰랐던 시절

씨스타가 우리 집에 있는 오래된 인스턴트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왜 쓰레기를 주냐고 소리 질렀던 그날의 표정만큼이나 어이없게 맛이 없었다.

그 순간 뭔가 망했다는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이렇게 맛없는 커피를 먹기엔 인생이 짧다.


그러고 있는 찰나 주문한 수프와 빵이 나왔다.

그런데 수프가 뜨겁지 않고 미지근했다.

만약 차가웠다면 착오가 있었나보다 하고 다시 가서 데워달라고 했을 거다.

그 지점이었다. 미지근? 이건 용서가 안 된다.

맛없는 커피는 그렇다 쳐도

미지근한 수프를 먹고 짜증 난 내 기분은 어떻게 보상받지?

분노가 치밀었고 이런 대접을 받게 한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유일한 복수는 내가 구독 서비스를 바로 해지하는 것뿐이다.

오히려 커피 구독을 한 순간보다 구독을 해지하는 지금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마케팅의 노예라며 남편을 비웃던 나는 결국 이렇게 되었다.

‘만나서 별로였고 다시는 보지 말자!‘

그 빵집을 나서면서 앞으로 다시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지가 나다 이 빵집을 보면 빵집 이름 말고 ‘식은 수프’로 기억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내 인생에서 저런 미지근한 것들은 싹 치워버리자고 리마인드 할 것이다.

혹시나 국을 데울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뜨겁게 데울 거다.


왜를 생각하면 꼭 부자가 되고 싶어 진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왜 나는 저런 나일론 마케팅에 넘어가 버린 걸까?

왜 호구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걸까?

제대로 된 커피라면 한 달 무제한이 만원일 리가 없잖아? 이 멍충아!

왜 이런 생각은 못했던 걸까?

내가 만약 부자였다면 이런 마케팅에 넘어가지도 않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정말 간절하게 부자가 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다이슨 청소기 배터리가 수명을 다해서 교체해야 하는데

정품이 아닌 짝퉁 배터리를 뒤지던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이걸 아마존에서 검색하고 어영부영하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워낙 모델명이 많아서 그걸 찾는 것도 헷갈리고

짝퉁을 산다는 그 찝찝한 느낌이 치욕스러웠다.

시간은 시간대로 써버리곤 결국 눈 딱 감고

비싸지만 정품 교체 배터리를 사려고 했는데 그것마저 품절이란다.

이건 무슨 소리냐? 결국 최신 다이슨 청소기로 갈아타라는 말이다.

부자가 아니면 어영부영 시간낭비에 언제든 노출되고야 만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 옹색함이란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다.


두 번째,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 ‘부자들이 주식을 하는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돈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통찰력을 실험하는 재미에 빠져

주식을 한다고 한다.

하긴 평생 놀아도 먹고 살 돈이 있는데

왜 그런 리스크를 감당할까? 생각해봤는데

자신의 감각을 테스트해보는 일이야 말로 진짜 신나는 놀이가 아닐까?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가 직접 게임에 참가는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은 미국에 산다면 한 번은 겪어야 하는,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목조건물이라 쥐라는 건

여기 사는 아무라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건 다 참아 넘겨도 이건 정말 취약하다.

남편 가게 창고에 쥐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르르 치를 떨면서 나는 스스로를 자가 격리시켰다.

다행히 잡았다고 하는데 남편도 직접 처리하는 건 죽기보다 싫어서

직원에게 100불을 보너스로 주고 부탁했다고 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을 타인에게 부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자는 아이스크림 집에서 알바를 했는데

주인이 바닥에 있는 껌을 떼라고 시켰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절대로 그걸 할수 없다고 생각되서 그만두고 나왔다고 한다. 그 순간이 부자가 되기 위한 시작점이었다고 회상하는데 자신이 오너가 되지 않으면 평생 누가 시키는 일을 해야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저마다 각자에겐 자기만의 부자가 되고 싶은 자극점이 있다.


부자가 아니어서 마케팅 호구가 됐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 부자가 되고 싶어 진다. 미지근한 수프는 내겐 명확한 자극점이 되었가.

그런데 내게 부자가 되는 것보다 인생에서 더 중요한 우선순위가 생겼다.


오늘 하루, 이것 만큼은 망치기 싫어


이 커피 구독과 식은 수프가 내게 가르쳐 준 건

‘부자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까 오늘 하루 최고의 커피를 마시자’이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고의 커피를 마시자.

그것 하나만으로도 하루를 잘 살아낸 기분이 든다.


우왕좌왕했던 커피를 향한 나의 입장이 분명해졌다.

박막례 할머니의 ‘커피 값에 돈 쓰지 마, 커피는 고민 있다고 하고 상사에게 얻어 마셔’

이 유튜브 강의를 재밌게 봤지만

내가 생각하는 커피를 향한 태도는 정반대다.

요조가 말하는 ‘오늘 마실 아메리카노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다.

오늘 하루, 커피만큼은 망치고 싶지 않다.




아침에 혼자서 마시는 커피

비 내리는 날에는 비 맛이 나고

구름 낀 날에는 구름 맛이 나고

눈 오는 날에는 눈 맛이 나고

맑게 갠 날에는 환한 햇살 맛이 나고

오직 그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살고 있는 기분


<에쿠니 가오리 [제비꽃 설탕 절임] 중에서 >

이전 14화 미국 병원 응급실에서 피크닉 해본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