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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Dec 04. 2021

지금 미국에서 고딩들이 이름을 한글로 쓰는 이유?

한국인이 세계인의 뮤즈다.


진짜 학교 다닐 맛 나겠다.


트위터에 재밌는 사진이 올라왔다.

딸이 보스턴에서 고등학교 화학교사를 하고 있는데

반 아이들이 리포트에 자기 이름을 다 한글로 써서 냈단다.

사진에는 제이든이라고 진짜 한글이 쓰여 있었다.

우와, 세종대왕이 이걸 보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코쟁이 노란 머리 미국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다니

(출처 : 박치욱 님 트위터)


남편은 이걸 보더니 믿기지 않는다며

“와 진짜 학교 다닐 맛 나겠다.” 라며 부러워했다.

자신이 학교 다니던 시절만 해도

동양인은 거의 투명인간 취급이었다고 했다.

눈 찢어졌다고 놀림당하는 건 기본에다가

하도 시비를 걸어서 그 말에 대꾸하다 보니 영어가 늘었다고 했다.

몸싸움도 터프했는데 살아남기 위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치욕의 흑역사를 들려주곤 했다.

이번 LA 공연장을 매진시킨 BTS 콘서트장에서 미국 여자아이들이 환호하는 걸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남편은 다시 한번 믿기지 않는다며 이건 정말 기적이라고 했다.


그 어렵다는 한국어를 왜 배우려 할까?

“한국어 학원 차려야 하는 거 아냐?”

나는 지금 이 낌새를 소중하게 포착하고 싶다.

방구가 잦으면 반드시 큰 똥이 찾아온다.

서둘러 메타버스에 한국어 스쿨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어를 진심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낌새가 자꾸만 느껴진다.


한인마트에 기웃거리는 미국인들 손에는

콩나물, 달고나 키트, 떡볶이 등등이 가득하다.

한국말 하나라도 더 써보려고 들이대는 모습이 나 같아서 눈길이 갔다.

서툰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에겐 보너스로 주어지는 특별한 귀여움이 있다.  


어릴 때 이민 온 남편도 새로운 한국말을 배운다.

“존버가 무슨 말이야? 떡상이 뭐야?”

한국말인데 그 안에 한국만의 정신이 박혀 있는 말이다.

지금 시대정신이 장착되어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말이다.

한국인들은 존버라는 말로 정신을 무장하고 헤쳐 나간다.

외국인들은 단순히 한국말을 배우고 싶은 게 아니라

한국만의 특별한 스피릿을 배우고 싶은 게 아닐까?


이번 추수감사절에 친척집에 갔다가

20인분의 요리를 혼자 다한 홀리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고생했다는 말을 완벽히 전할 영어는 없다.

고맙다는 땡큐는 그 감정을 전하기엔 너무 심플하다.

한국에선 밥먹듯이 정말 자주 쓰는 말인데 이걸 대체할 영어는 없다.

한국인은 서로를 격려해주고 노력을 인정해주는 말이 일상어이다 보니 분명 단합에 강한 민족이다.


남편과 영어로 번역이 안 되는 한국말을 이야기하다 보니

“서운하다”라는 것도 막막했다.

가장 비슷한 “실망했다” 라는 걸론 대체가 안 된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진짜 그런 말조차 없으니

그 감정을 모르고 사는 게 아닐까?

서운함을 모른다는 건 다크 초콜릿의 맛을 모른다는 거랑 똑같다.

내 모국어가 이토록 섬세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게 자랑스럽다.


미국 시민권 따윈 필요 없어

그날 남편은 우편함에서 무언가 꺼내더니 짱구 춤을 췄다.

드디어 바이오매트릭스(지문등록) 예약이 잡힌 것이다.

영주권을 따기 위해 이방인이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서류의 노예에서 드디어 해방되는 날이 가까워져 가고 있다.

꼴랑 임시 영주권에 무슨 호들갑이냐 싶지만

이 과정을 시작한 지 벌써 3년째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무기한 일정이 취소 연기되면서

우리는 기다림의 달인이 되었고 요상한 전우애가 샘솟았다.

남편은 격려의 뉘앙스로 이런 말을 종종 한다.

“미국 시민권 얼른 따야지.”

영주권을 따고 5년 후에 시민권을 딸 수 있다.

“오빠는 이렇게 눈으로 보고도 분위기 파악이 안 돼?”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냥 준다 해도 나는 싫다.

미국 시민권 따윈 내게 필요 없다.

지금 한국이 전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기 때문이다.

모든 영감은 한국에서 나오지 않나?

오징어 게임, 기생충, BTS...

한국인이 세계인의 뮤즈이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 시민권이 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막연하게 북한을 여행해 보고 싶어서다.

남편이 북한 덕후라 그에게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한국 태생이지만 호주나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북한 여행기를 읽으며 정말 궁금했다.

평양냉면도 먹어보고 싶고 미용실에서 머리도 자르고 싶고

느려 터진다는 인터넷도 써보고 싶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뭐가 될지도 모르는데

선을 긋고 살아야만 하는 그 애틋한 감정을

생생하게 마주해 보고 싶었다.

현재 북한에는 책을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했다.

언젠가 평양을 여행하며 내가 쓴 책을 선물하고

또 거기서 북한 여행기를 쓰는 게 내 로망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기세라면

미국 시민권이 없이도 가능할 날이 올 것만 같다.

일시적인 국뽕이 아니다.

내가 온몸으로 느끼는 낌새가 그걸 확신하게 만든다.


한국인이 세계인의 뮤즈다.

“오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둬.

앞으로 한국 시민권 따려고 전 세계가 난리가 날 거야

한국 시민권이 권력이 될 거라고.. “


서러움과 분노의 믹스매치, 거기서 나오는 폭발적인 원동력.

한국인이 얼마나 재밌는 사람들인지 세계인들이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을 겪은 거지나라에서 유행을 이끄는 뮤즈가 되기까지. 그 자체가 판타스틱한 기적이다.


아침부터 김치를 먹어?

전직 대통령이 자식에게 줄 돈 빼돌리다가 감옥에 가?

한국사람은 왜 죽고 싶다면서 홍삼을 챙겨 먹어?


궁금증의 차원이 달라졌다.

이건 정말 '한국인이 세계인의 뮤즈다'라는 구체적인 낌새다.

어디서 왔냐고 물을 때 한국이라고 하면 달라지는 당신들의 그 눈빛이 , 빼박 확실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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