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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Sep 01. 2021

이 수박을 들고 너를 찾아가고 싶다

빌런인 남편부터 끊자!

[이 수박을 들고 너를 찾아가고 싶다.]

좋아하는 시 제목이다.

수박을 들고 찾아가고 싶은 사람은 몇 명 있는데

나는 이걸 할 수 없다는 걸 어제 알았다.     


수박을 들어 본 적이 언제였더라?

코스코에서 산 수박을 차에서 내리려는데

번쩍하고 들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의 비참함이란...

다시 한번 배를 힘껏 쥐어짜고

두 손으로 수박을 들었다.

수박 하나로 낑낑대고 있는 내가 애처로웠다.

서울에선 마켓 컬리로 문 앞에 배송되는 수박만 먹었지

땀 뻘뻘 흘리고 수박을 들고 온 감각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내에서 내 작은 케리어는 혼자 올리는 정도의

체력은 있는 사람인데 수박 하나 내손으로 못 들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아니 수박 하나도 제대로 못 드는 주제에’

출렁이는 뱃살을 느끼며 도저히 이대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뱃살, 빌런은 그 누구도 아닌 남편이다.

밥을 따로 먹겠다는 긴급 시국선언을 했다.

왜 남편이 무슨 죄냐고?

그의 죄를 물으신다면 살찌지 않는 체질로 태어난 원초적 죄다.    

 

미국 사는데 마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다.

지천에 탄수화물이 널렸고 뉴욕 같은 도시가 아닌 이상

도어 투 도어로 시간을 따로 내지 않으면 걸을 일도 없다.

미국은 숨만 쉬어도 살이 찌는 곳이라

말랐다는 건 정말 무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내 남편이 바로 그런 인간이다.

이 살찌기 쉬운 환경에서 마른 몸으로 저항하며 살아왔다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남편을 처음 만난 날에 연남동 기사식당을 데려갔다.

거기서 그는 밥을 두 그릇이나 먹는 퍼포먼스를 보였고

밥 먹는 거 보면 앞으로가 보인다더니

성격이 둥글둥글 시원시원하겠거니 했다.

얼마 안가 그 거짓부렁은 들통났다.

밥 먹는 모습에 나는 속았고

평소엔 음식 앞에서 깨작거리는 인간이었다.

창조주가 그를 만들 때 식욕을 빠뜨리셔서

먹는 것에 관심이 없다.


만약 마시멜로 실험 같은걸 그에게 했다면

오류가 났을거다.

기본적으로 모두가 먹고싶어 한다는

전제조건이 그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마시멜로를 줘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요상한 인간이다.

하루에 한 끼 먹는 인간이랑 살려니 정말 피곤하다.

부작용은 그 스트레스로 내가 더 많이 먹게 된다는 거다.    

 

남편은 1일 1 스타벅스 캐러멜 크런치 벤티다.

밥 한 공기보다 칼로리가 많이 나가는데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나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미러링이라는 게 정말 무섭다.

중독은 더 빨리 전염되는 것 같다.

 

스타벅스를 끓을게 아니라 남편부터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난번에도 한번 선언을 했다가 실패했다.     

단 한 번도 나의 근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운동은 '살찌면 보기 싫으니까'가 이유였고

가기 싫은 나 자신을 억지로 달래 가며 갔다.

그런데 김종국이 유튜브에서 한 말 한마디가 날 바꿨다.   

“인생을 사진에다 걸면 안 돼

인생은 끊기지 않는 동영상이야

계속 이어가는 동영상으로 살아야지”   

  

바디 프로필이 유행이라 단기간에 그걸 위해서 살을 빼고

유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왜 다이어트니 이런 것에 실패하고 흥미를 잃었는지 알 것 같았다.

목표가 잘못된 거였다.

살을 빨리 빼고 싶었고 인스타에 올리는 사진이 중요했다.

먹고 싶은 걸 참고 다시 폭식하고 이 바보 같은 짓의 반복이었다.

지금 당장의 사진 한 장이 아니라 탄탄함을 평생에 걸쳐 계속 이어가고 싶다.

다시 목표를 설정했다.     

섹시한 할머니에서 호방한 할머니로

나의 목표는 한 손으로 수박 들고 찾아오는 할머니다.


그러기 위해 꾸준해질 도리밖에 없다.

A4 종이 한 장이 쌓이듯 하루하루는 티가 안 난다.

그런데 이걸 매일매일 쌓아 가면 엄청난 걸 얻는다.

누가 해줄 수도 없고 내가 쌓은 걸 남이 뺏어 갈 수도 없다.

오직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만이 내 것이 된다.

그래서 꾸준함은 깨끗하다.     


오늘도 남편이 저녁에 피자 먹자고 꼬신다.

그가 맛있게 먹는 미국 도미노피자는 맛이없다.

왜인지 몰라도 한국 도미노피자 먹어보면

여지껏 사기당한 기분이 들고야 말거다.

맛없는 거 먹고 살찌는 건 진짜 최악이다.

나 자신에게 맛있는 것만 대접하는

예의를 갖추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흔들린 나란 인간이 싫다.


운동 재끼고 영화나 보자고 꼬신다.

얄밉고 짜증 난다.

그는 운동을 못 가는 이유를 즉석에서 화수분처럼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다.     

평소 같았으면 그 꼬임에 놀아났겠지만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나의 소심한 복수는 남편은 절대 알 수 없는

‘꾸준함의 맛’을 알게 되고 혼자 만끽하는 것이다.



————————————————————————


이 수박을 들고 너를 찾아가고 싶다.

김상혁<월간 현대문학>​


어떤 소설은 50년, 100년 정도는 훌쩍 뛰어넘어, 선명한 줄무늬처럼, 한 사람의 성장을 눈에 그리기도 하지만, 겨우 걷기 시작한 네 아이는 대체 언제 다 자랄까? ​

수박 써는 우리 옆에서 땀 뻘뻘 흘릴 네 아들이 다 컸을때 여기 여름은 얼마나 더 더워질까?​

마트에서 수박을 두드리며 너를 생각했다.​

다 같이 배고픈 정오에 너를 찾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명한 줄무늬처럼, 어떤 영화는 광활한 숲과 들판, 또다른 숲, 들판을 훌쩍훌쩍 뛰어넘어,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같은 음식 먹는 장면을 그리기도 하지만, 너는 먼 곳으로 떠나는 일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시간은 네가 앉아서 쉴 자리에 자꾸만 물건을 쌓아둔다.​

나는 수박을 들고 무더운 길을 걷는다.​

이 수박이 특별한 맛을 냈으면 좋겠다.​

수박이 우리의 오전을 오후로 금방 바꾸어주면 좋겠고, 그래서 네가 오늘과 여름을 미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예배의 지루한 순서처럼, 그래서 위안이 되는 익숙한 형식처럼, 현관에 서서 나는 너의 아이를 받아 안는다.

너는 아이와 바꾸어 수박을 들어 안는다.

서로에게 먼저 들어가라 권한다.

진짜 우리는 친구같다.

거짓말같이 선명한 줄무늬처럼, 너와 나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 한눈에 그려지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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