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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Sep 04. 2021

소녀들의 축구를 구경하다 떠오른 한 명의 친구

여자축구의 맛

미국 사람들은 뛰는 것을 좋아한다.

어딜 나가도 사람들이 달리고 있다.

마크 주커버그도 경호원을 대동하고 조깅을 하고

노숙자도 조깅을 한다.

빈부의 격차에 상관없이 뛰는 걸 사랑한다.

그럴 수 있는 건 뛸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 아닐까?

어떤 언어보다도 뛰고 있는 행동이

‘이곳에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는 느낌을 준다.   

  

요즘 달리기를 하려고 자주 가는 공원이 있다.

출구와 입구가 딱히 없어 좋다.

시작점과 끝점을 내 맘대로 정하는 거다.

이 공원은 진공청소기처럼 우울함을 빠른 속도로 빨아들인다.

이유는 내 눈앞의 사람들이 모두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 공원에 왔을 땐 농구장, 축구장, 야구장, 스케이트보드장이

한꺼번에 한 곳에 모여 있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달리고 있으면 구경할 수 있는 스포츠가 조금씩 바뀐다.

축구장5개 야구장7개 저세상 스케일

그러다 내 발을 멈춰 서게 한 건 바로 골대 옮기는 소녀들이었다.

<골 때리는 여자들>이나 김 혼비 작가 덕분에

요즘 여자축구에 관심이 갔다.

그런데 공차는 여자는 봤어도 골대 옮기는 여자는 처음 본다.

유니폼을 입는 소녀들이 무거운 골대를 깔깔거리며 같이 옮기고 있는데

나도 껴서 같이 해보고 싶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순수함 같은게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그건 올여름 내가 본 최고의 시퀀스였다.

내가 골대를 옮겨본 적이 있나?

아니 골대를 만져본 적도 없다.

자세히 보니 골대의 벌집 모양의 그물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그 장면에 매료돼서 한참을 구경했다.     

내눈엔 너무 예쁜 장면

경기 중에 한 소녀의 슈팅이

다른 소녀의 몸 중앙에 큰 소리를 내며 아찔하게 강타했다.

그녀의 심장소리가 내게 들리듯이 생생했다.

그 시절의 나였다면 너무 당황해서 울어 버렸을 텐데

그러곤 안 봐도 비디오다.

공을 찬 친구가 미안해서 달려오고 뒤는 아수라장 말해 모해!

그런데 공을 맞고도 다음 슈팅으로 바로 들어가는 순발력이

그 잔디밭을 장악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영화였다면 누가 빨리 감기를 한 것 같았다.    

 

아무런 의도 없이 날아오는 공에 맞아보고

그걸 털어내는 경험, 지금 그 소녀는 그걸 통과했다.

이유 없이 그냥 살아가는 동안이라 맞게 되는 강스파이크가 있다.

뒤에서 휘갈기는 양아치 슛도 있다.

그런데 겪어보니 그 당시의 아픔, 쪽팔림, 당황스러움을 품는 것보다

빨리 휙 지나가 버리게 만드는 빨리 감기 기술이 살아가는데 유리하다.

그런 슈팅에 많이 부딪혀볼수록 그 감각을 키울 수 있다.    

 

아무도 보지 못했던 파울을

심판에게 쪼르르 달려가 파울이라고 외치며

끝까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나는 특히 저런 소녀를 보면 유난히 애틋하다.

나는 저렇게 살아보지 못해서

내 유년시절에 대한 대리만족이랄까?     


요즘도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걸 하는지 모르겠다.

뭘 그렇게 책상에 앉아서 외우고

시험 문제 푸는 기술을 익혀야 했는지 모르겠다.

그럴 시간에 만약 우리도 축구를 했다면

지금쯤 조금 다른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보드라운 시절인데 딱딱한 책상에 묶여 있었던 게 못내 아쉽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겼고 그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아까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던 그 소녀 같은 애가

우리 반에 한 명 있었다.

일본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배울 거라던 상진이는

모두가 인수분해 풀 때 그림을 그렸고 일본어 단어를 외웠다.

대부분의 친구들 이름은 많이 까먹었지만

혼자 맨 끝 책상에 앉아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던

상진이의 이름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자기의 인생에서 자기를 주인공으로 만들 줄 알던

상진이의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냐면 우리는 기름 넣는 차 밖에 모르는데

상진이는 혼자 전기차를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친구들 모두가 자기만의 길로 가는 상진이를 부러워했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진 않았다.

내가 손에 잡히지 않는 불안함에 떠는 동안

상진이는 계속 그림을 그려 나갔고

나중엔 수학의 정석보다 두꺼워진 상진이의 노트를 기억한다.     


상진이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소녀들의 축구를 구경하던 공원에서

같이 생맥주를 마시고 싶은 옛 친구가 떠오른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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