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의 찐 우정
내가 다니는 도서관 앞에는 큰 나무가 있다.
그늘이 크게 드리워져서 자연스레 사람들이 여기로 모이고 흩어지곤 한다.
주말에는 요가 클래스도 열리고
연인, 가족, 친구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이 다녀간다.
2층에서 늘 이 풍경을 자주 구경하는데
하루 종일 이거만 보고 있어도 재밌다.
오늘은 중2, 딱 중2로 보이는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왔다.
각자의 포즈를 아이폰으로 찍어서
서로가 모니터 해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잠시 후 도서관 관계자로 보이는 명찰 찬 사람이 나와 한참을 서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고 있어서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는 모르지만
한 명이 그 어른을 마크하고 있는 건 선명하게 보였다.
친구들을 방해물로부터 호위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나머지들은 계속 태연하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었고
그들은 그 누구도 쫄지 않았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게 생각났다.
윷놀이에서 엎는 거보다 잡는 게 더 유리하다는 거였다.
뭉쳐서 세력을 확장시키기보다는
각자 자리에서 적을 제거하는 게 낫다는 뜻이다.
그 전략을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걔네가 딱 그러고 있었다.
잠시 후 한 명의 어른이 더 합세해 그들은 결국 쫓겨나고야 말았다.
중2로 추측되는 그들은' 재밌는 일들이 우릴 기다리고있어'라는 표정으로 사라졌다.
쏴라 있는 ~찐 우정의 풍경을 보고 있으니
우리 엄마가 해준 찐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엄마를 포함한 친구 3 총사가 있었는데 한 명이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었다.
한 명이 망을 보고 나머지 한 명이 아픈 친구 입에 커피를 넣어줬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의사가 알면 기겁할 이야기지만 아픈 친구가 커피를 너무 좋아했다고 한다.
아픈 친구가 이제 지구여행을 마치고 먼 길을 떠날 걸 알았기에 기꺼이 그 일을 벌였다고 한다.
내겐 찐 우정을 나눌 물리적인 친구들이 다들 멀리 있다.
이방인인 주제에 나는 외톨이를 추구한다.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고독을 껴안고 산다.
여기서 교회를 나가거나 모임에 나가서 친구를 사귈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지금이 좋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얼굴 모르는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걸 좋아하게 됐다.
몇 년 전의 전화 한 통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도저히 무리하게 잡은 여행 일정 때문에 갈 수 없게 된 친퀘테레 호텔을 취소하려고 했다.
그런데 호텔 예약 사이트 직원이 뜬금없이
“아니요 가실 수 있어요 꼭 가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 목소리가 너무 절실했다.
그냥 취소를 클릭하면 되는 사람이 내게 이렇게 까지 절실할 이유는 없다.
그 절실함의 진심이 내게 와닿았다.
그 사람 덕분에 평생 다시 와보기 힘든 친퀘테레를 여행했다.
그 말 때문에 무리를 했고 내 인생 최고의 기억으로 남았다.
'설득은 내용이 아니라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겪어보니 누가 하느냐 보다 중요한 건 태도다.
‘내가 이렇게 까지 해서 이득 볼 건 전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을 위해서 이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정말 귀한 마음이다.
이건 어쩌면 지구인의 의리 같은 게 아닐까?
그 사람은 진짜 내게 왜 그랬을까?
죽을 때까지 이걸 알 수 없을 거다.
그 사람을 만날 일도 없고 만난다 해도 알아볼 수 없을 테니까,
정말 고마웠다고 90도로 인사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 이걸 잊지 못한다.
내 인생에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순간이 전환되는 찰나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했던 말로 용기를 얻고 거기까지 갔던 일,
그때 그 감각을 잘 기억해 뒀다가 나도 되돌려주려 한다.
내가 이득 볼 건 없지만 상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주는 기쁨이 있다.
그 즐거움을 톺아보며 나도 기꺼이 내 시간을 내어준다.
조금 신세를 지고 또 신세를 갚고 그 반복으로 채워지는 게 인생이 아닐까 싶다.
달에 가서 보는 지구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창백하고 푸른 줄로만 알았는데 그걸 보러 달에 간다니,
정작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전혀 모른다.
그래서인지 왠지 지구에 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하다.
같은 지구인이라는 것만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과 우정을 나누고 나면 요상하게도 낭만이 차오른다.
얼굴도 모르는 당신의 흔적이 이렇게 생생히 내게 남았다.
그 흔적이 팬데믹이라는 참혹한 현실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