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를 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미래
911 테러가 20년이 되었다.
처음으로 영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는 걸 실감했다.
내 인생에서 아주 선명하게 남은 그날의 기억은 공기의 감촉이다.
그 뉴스를 듣던 여름 끝자락의 어떤 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딱 적당하게 바삭하고 선선했다.
그래서 늘 상쾌한 밤공기가 느껴질 땐 그 사건이 떠올랐다.
20년이 지났지만 계절이 자아내는 밤바람은 신기하게도 똑같다.
다들 911 테러 20주년 뉴스를 보며
20년 동안 뭐했는지 시간만 가버렸다고들 한다.
나 역시 드라마 <인간실격>에서 전도연의 심정으로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아무것도 되지 못했지만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는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되지 못했기에
이제는 뭐라도 되지 않을까?
어쩌다가 사주와 타로카드를 공부했지만
사주팔자를 까 보지 않아도 내겐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내가 따로 미래를 예측하는 소스는 따로 있다.
갖고 태어난 8개의 사주팔자보다
오늘 내가 하는 행동이 미래를 더 크게 바꾼다.
나와 내 주변인의 인생을 팔로우해본 결과
발견한 나만의 빅 데이터다.
미래를 만드는 소스는 다음과 같다.
1. 자주 내뱉는 말이 예언이 된다.
아카데미 같은 걸 나오지 않고 나는 독특한 방식으로 방송작가가 됐다.
그래서 정보를 나누는 동기라던지
끌어주고 밀어주는 동기라던지
술 마시며 같이 방송국 욕할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기로 이곳에 발을 들였고
매 순간마다 힘들게 다음 프로로 옮겼다.
그런 주제에 화려한 꿈을 꿨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예능의 꽃
<인기가요>가 하고 싶었다.
이 가능성을 확률로 따지면 과연 얼마가 될까?
이건 노력한다고 성사되는 게 아닌 신의 영역이다.
일요일에 생방송으로 하는 프로였기에
대놓고 나는 일요일에 일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싸이월드에도 써놓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반복해서 계속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는 그게 현실이 됐다.
정말 신기하게도 <인기가요>를 하게 됐고
한번 도 하기 힘든 걸 두 번이나 했다.
내가 가진 행운을 모조리 여기다가 써 버린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때 알았다. 내가 하는 말은 그 자체로 예언이 된다는 걸.
굿모닝이라는 사소한 인사가 그렇듯이
그 말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은 아침이 된다.
상대에게 해주는 말이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듣고 있는 말이다.
내가 자주 뱉는 말엔 과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요상한 힘이 있다.
어떤 연구 결과, 말의 65%가 현실이 된다니 꽤 괜찮은 숫자인거 같다.
2. 서로의 질문이 미래를 설계한다.
엄청나게 뛰어난 스타보다 바로 내 옆의 친구가 결과를 낼 때
자극받는 게 인간이다.
가까운 주변인 5명을 평균 낸 게 나 자신이라 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가까이 두라는데
나는 ‘나를 긁어주는 사람’ 옆에 있으라고 하고 싶다.
책을 내고 싶던 어둡고 긴긴 시절
먼저 책을 낸 언니의 말 한마디가 나를 바꿨다.
“왜 안 써?”
그 말이 나를 긁었다.
내가 복권이라면 동전으로 나를 긁어준 거였다.
다들 쓰고 싶다고 말만 하고 안 쓴다는 거였다.
먼 훗날 그 언니는 베스트셀러 작가 되었다.
쭈구리 시절 진짜 나를 행동하게 만든 건
“책 써.”라는 응원의 말이 아닌 “왜 안 써?”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나를 움직였고 나는 산전수전을 겪고 첫책 <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를 냈다.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미래를 설계한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을 주셨다 했다.
그런데 질문이라는 건 참 번거롭다.
애초에 사랑이 없으면 하기 어렵다.
때로는 구질구질하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떠나 감동적이다.
그 능력을 아낄 생각 말고 흥청망청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