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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Sep 21. 2021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 질까?

작지만 울림 있는 목소리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에 온 이후로

한국 뉴스들에 더 귀를 쫑긋하게 된다.

막상 거기 있을 때는 그런 것들에 무뎠는데

밖으로 나오니까 내일처럼 뾰족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남자 친구에게 폭행당해 죽은 마포주민이랄지

자궁근종 수술 후 성폭행당한 환자랄지

그런 뉴스들을 들으면

잠자고 있던 내 분노 감각들이 깨어난다.

마포에 살았고 자궁근종 수술을 했었다.

그랬기에 나도 충분히 당할 수 있는 일이었잖아 싶으니

등골이 서늘하다.

강남역을 걸어갔을 뿐인데 살해를 당했던 사건도 있었다.

막상 그 시절에는 내가 먹고살기 바빠서

이 정도론 분노하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에서 약자로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오른 감각이다.

이제야 평범한 사람이 겪는 예고 없는 불행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더 이상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는 그냥 읽고 넘긴 인터넷 카페의

억울한 글에 지금의 나는 꼭 글을 남긴다.

분노하고 저항한다.

작은 목소리를 내는 이 느슨한 연대가 힘이 되길 바란다.

흩어지지 말고 뭉쳐지길 바란다.


미국에서 둘 다 유학하고 공부하는 신혼부부인데

얼마 전 시어머니가 가족들 생일을 문자로 보내면서

아들은 못 챙기니까 며느리에게 챙기라 했다는 사람의

고민 글이 올라왔다.


명절에 시댁이 아닌 각자 집에 간다던지

커뮤니케이션은 며느리가 아닌 각자의 가족과 한다던지

이런 건 국룰로 정해야 한다. 제발


어느 순간 나는 '한국 여자'라는 존재가 특별한 집단으로 여겨졌다.

박세리, 김연아가 대표 아이콘인데

그들은 마치 홈그라운드가 아닌데

홈그라운드인 것처럼 플레이를 한다.

아주 특별한 존재들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그들의 에너지와 정신건강을 저해하는 것들이

얼마나  국가적 손실인지 모르는 건가?

혹시, 그들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우아함을 질투하는 건가?

국가발전 아니 전 지구적 발전을 위해서

한국 여성의 앞길을 막는 거 , 거슬리게 하는 아주 작은 거라도

싹 다 치워주길 바란다.


왜 그냥 보통사람인데 며느리라는 존재 앞에서는

괴물이 되기도 하는 걸까? 참 기묘하다.

설명하기 힘든 이 특수한 상황 때문에 한국 여자는

불필요한 싸움을 해야만 한다.


나는 댓글을 달았다.

시어머니도 보고 듣고 배운 거라곤 구닥다리 세상이었으니

그런 게 아닐까요?

지금부터 우리가 이제 바꿉시다.

바꾸려면 깨부수어야 하고요


그 밑에 다른 사람의 댓글도 달렸다.

시부모님들도 며느리 생긴 게 첨이라

꿈이 크고 현실감각이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달라질 겁니다.


요상하게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그 말이 위안이 되었다. 작지만 확실한 울림이었다.

며느리가 생긴 게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우리 시엄마는 공교롭게도 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처음부터 안 계셨다.

그래서 종종 시엄마를 볼 때마다

시어머니가 없는 사람은 이 기분을 모르겠지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시엄마도 며느리가 생긴 건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니까 맺힌 것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스르르 풀어졌다.

내일모레 시엄마가 온다는데 요상하게 설렌다.

왜 며느리와 시엄마 사이엔 낭만 이란 단어가

어색할까?

나는 아직도 나와 시엄마,

서로의 인생에서 각자가 귀한 손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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