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공기

feat. 오솔길 스포츠 센터

by 보리차

매일 가는 공원이 있다.

축구장이 여러 개 있어서

걷다 보면 축구 레슨을 받는 학생들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공을 가지고 오른쪽 왼쪽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한쪽에선 짧은 구간을 반복해서 전력질주로 뛰고 있다.

전력질주, 보고 있는 내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난 저렇게 전력질주로 뛰어 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앞으로 내 생에 저럴 일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지금 뛰자는 생각이 들어 발을 빨리 움직였다.


뛰고 있으니 뛰는 사람을 더 많이 스치게 된다.

갑자기 내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장면에

뿅 하고 달리는 사람이 나타났다.

작은 구멍에서 그 사람이 튀어나온 것이다.

너무 신기해서 나도 따라 구멍으로 가봤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서 토끼가 튀어나올 법한 느낌이었다.

분명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다.

목동에 살 때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집 앞 1분 거리에 작은 오솔길이 있다는 걸 몰랐었다.

아파트와 고속도로가 접하는 길에 요상하게 숨겨져 있던 길이었다.

딱 그때 그 길을 발견한 그 느낌이었다.

그 오솔길만큼이나 이 오솔길도 반전의 재미가 있었다.


나무가 울창해서 빛이 겨우 새어 들어오는 곳이었다.

빛의 각도에 따라 오솔길의 조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그러자 나뭇잎의 색깔도 달라졌다.

이제 판타지 웹툰에서 나올 법한 기묘한 일이 지금 펼쳐지면 된다.

그런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여기만의 분위기가 있다.

피톤치드가 온몸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병원 대신 이 오솔길을 걸으면 치유될 것만 같다.

감히 바이러스 같은 건 얼씬도 못할 건강한 숲이다.

깨끗하고 달큼한 공기가 공짜에다 무한대로 있었다.

가져갈 수 있다면 싸들고 가고 싶은 공기였다.

내 영혼의 깊숙하고 내밀한 구석까지 바람을 쐬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중간쯤 갔을 때였다.

생활자에서 여행자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이 오솔길에 들어 선건 우연이 아니다.

여행의 신이 오늘 나를 이곳으로 계획적으로 끌어들인 게 분명하다.

거긴 피톤치드와는 다른 결의 공기가 있었다.

'피톤치드 잠깐 짜져 있어줄래?' 와 같은 카리스마였다.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가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옆에서 아이는 엄마의 보호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너무 궁금해서 가까이 가봤다.

엄마는 아이폰을 유모차에 올려놓고 유튜브를 보며 홈트를 하고 있었다.

와 대박! 유모차 높이가 정말 기가 막히게 딱이었다.

그 순간 내안의 무언가가 깨어났다.

그 모습은 어떤 대단한 예술 퍼포먼스 보다도 나를 압도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완벽한 여행이다.

사라질까 두려워 소상히 기록 해두고 싶은 찰나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 운동도 해'가 아닌

'나는 운동을 하면서 육아도 해'의 뉘앙스였다.


그녀는 운동 동작에 온전히 몰입하고 있어서

내가 지나가는지 도 모르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이 장소를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이 작은 오솔길이 스포츠센터가 된다 생각하니

환경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나를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솔길에서 홈트를 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자기만의 공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감각만 있으면 어떤 구렁텅이에 빠져도 헤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피톤치드와는 비교도 안되게 나를 살아있게 한다.

어쩌면 지금 내게 절실히 필요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오솔길 끝에서 반대로 한번 더 걸을까 고민했다.

욕심이 났다.

오늘 새로 생긴 내 기분과 감정이 흘러넘쳐 용량 초과다.

내가 온전히 음미할 수 있는 사이즈가 여기까지다.

내일의 발견을 위해 아껴두고 산책을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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