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거면 포틀랜드 왜 갔어?

선을 넘는 질문

by 보리차

날이 차가워졌다.

내 생각에 늦었다고 생각해 서두르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묻는다.

“안 가면 안 돼?”

자기랑 놀자는 그의 개수작에 다행히 넘어가지 않았다.

“나 글 쓰는 시간이야”

내가 정해놓은 루틴이고 나는 지금 도서관에 가야 한다.

오늘은 정말 가기 싫은 내가 내 몸을 이끌고 나가려는 안간힘이 보였나 보다.


“글은 왜 쓰는 거야?”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한 질문 같았다.

왜냐면 남편은 내가 글 쓰는 것을 가장 지지해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책상을 청소해주고 , 노트북을 바꿔주고, 책을 사주고,

글 쓰는 거 이외에 방해되는 건 차단해 준다.

이런 거 저런 거 해볼까 궁리하면 글에만 집중하라고 한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그 누구도 내게 그딴 걸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내 주변은 모두가 글 쓰는 사람이고 글 쓰는 게 당연하니까

그가 “주식은 왜 하는 거야?” “여행은 왜 가는 거야?”

이런 걸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처럼.


어쩌면 나 역시 궁금했다.

왜 이렇게 나 자신을 몰아붙이는 건지.

나도 나를 붙들고 소상히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하루키 종족이야

그러니까 내 인생을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내가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쓰는 거야

세계관을 글로 정리해 놓으면 마음이 편해지거든

내 삶에서 뽑아낸 낭만과 갬성을 잘 간직해 둘 때 살아있다고 느끼거든

미국에 오고부터는 또 하나가 더 있어

내 모국어를 사랑하고 더 풍부한 언어를 다루고 싶어서


이렇게 겉멋 부리며 말하고 싶었지만 개뿔 그땐 이 말이 안 나왔다.

역시 글로 정리 해 두지 않은 생각은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그냥 “몰라도 돼”라고 했다.


그런데 빠꼼이 남편이 모를 리 없다.

조금 깊이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성과도 없이 번번이 까이지만 하는데

계속 앞으로도 글을 쓸 생각이야?’

라는 뜻이 아닐까도 싶어 마음이 복잡해진다.


종종 남편도 글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아질 테니까

도서관에 갈 때마다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진 않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글은 왜 쓰냐고 묻는 남편에게서 갑자기 뮤즈의 향기가 느껴졌다.

내게 영감을 주는 책, 영화, 음악도 많지만

불나방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이다.

그 질문이 처음 국경을 넘었을 때처럼 어떤 선을 넘는 기분이 들었다.

선을 넘으니 다른 차원의 눈이 생긴다.


내가 왜 이 사람을 만났는지

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됐던 건지

왜 이 결혼을 했는지

왜 포틀랜드에 오게 됐는지

명확한 대답이 거기 있었다.

그래 좋다. 왜 글을 쓰는지 보여주자

가장 가까이에서 구경하게 해 줄게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결혼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글 쓰는 이유를

나는 신속히 증명해 보이고 싶다.

고인물! 선을 뛰어 넘자!


이 우주에서 우리에게 두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메리올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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