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금까지의 삶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단 한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언젠가 남편이 물었다.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어 몇 초간,
짧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준영이가 며칠 동안 괴성을 지르며 잠을 안 자고, 안아달라며 울부짖는..우리로서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견디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 날들이 연속될 때 너무 힘들고 지쳐서 묻는 말임을 알기 때문이다.
짧게 심호흡을 하고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준영이가 막 태어났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
“지금 이 고통의 기억을 다 가진 채 시간을 선택하는 건데, 다시 준영이의 엄마로 살겠다는 거야?”
“응…더 일찍 알았더라면 , 갓난아기 때부터…그때부터 더 치열하게 노력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좋아졌을 텐데. 우리도 힘들지만 준영이만큼 답답하고 힘들지는 않겠지. 그게 너무 미안하고, 아쉬워.”
아이의 시간은 너무 천천히 흐르는데 세상의 시간은 야속하게도 빨리 흘러서 어느새 아이는 학교를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의 발달은 처음, 가볍게 치료를 시작했던 것보다 훨씬 느렸고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 아프고 긴 시간만큼 단단해지고 넓어졌다.
27개월, 너무 순하고 반응이 없어서 찾아갔던 병원에서 혹시라도 그렇다고 할까 봐 너무 무서워 차마 의사에게
묻지도 못했던 말.
“선생님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무슨 그러니까 음... 그런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요?”
“정확하게 진단하기에는 어리니 일단 치료를 시작하고
지켜봅시다.”
자폐스펙트럼 장애.
설마가 현실이 될까 봐 포털사이트 검색어조차 입력하지 못할 만큼 손 떨리고 두려웠던 단어를 이제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만큼
아이와 내가 함께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