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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바람 Apr 09. 2018

02. 엄마가 아니고 '내'가 되는 시간

"저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나는 회사에서 누군가와 조용하게 밥을 먹는 기회가

생길 때면,준영이가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곤 한다. 처음에는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한번 하고 나니, 속도 시원하고 조금씩 더 편안해진다.

 

동료들이 내 상황을 알고 '나'와 '장애인'을 조금 더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면 대부분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너무 당황해서 나에게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머릿속이 분주해지는 유형 또는 덤덤하게 별 일 아니라는 듯 대화를 이어가는 유형


전자는 TV나 영화, 기사 등 매체를 통해서 자폐성 장애인을 접해본 사람들이 많고 후자는 봉사활동을 통해서나 또는 주변 지인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자폐성 장애인을 만나본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조금 어색해진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주로 이런 말을 듣게 된다.


- 아, 경증인가 봐요.

- 자폐성 장애가 있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요.

- 자폐를 앓고 있는 아이처럼 안 보여요.  


경증과 중증이 어느 정도 차이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지만

장애인등급제 분류표에 의하면


- 내 아이는 중증 자폐성 장애이며

- 미술, 음악, 스케이트, 수영 등 다양한 치료를 시도해보았지만 아직 서번트 능력은 발견되지 않았고

- 양상이 너무도 다양해서 진단명에 '스펙트럼'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처럼 자폐인을 규정할 수 있는 표상이 없으니 사진상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건 당연하다.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그렇게 아픈 아이를 두고 웃는 얼굴로 회사를 다니고, 스스로 장애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낯설고 새로워서가 아닐까

그리고 누군가는 나를 보며 아이를 두고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피치 못할 경제적 사정이 있는 불쌍한 엄마라고 안쓰러워하거나 모성보다 야망에 불타오르는 비정한 엄마라고 비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애아를 키우며 엄마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욕심인 걸까?


준영이 치료를 위해 1년 간 휴직을 하고, 복직을 앞둔 시점

내적 갈등이 극에 달해 주변을 둘러보니 프리랜서, 자영업, 커리어를 바꿔 장애와 관련된 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많았지만 아픈 아이를 키우면서 계속 회사를 다니는 엄마는 드물었다.


내가 다시 회사로 나온 건 '나'와 '아이'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치료 /치유에 대한 불분명한 정보에

팔랑거리는 마음.

남편과 아이가 잠들고, 혼자 남은 새벽이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불면에 시달리던 날들.

새벽마다 도시락까지 싸서 매달 수백만 원의 치료비용과 정성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손톱만큼도 자라지 않은 것 같은 절망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내 자존감을 회복하고 오로지 내 아이만 보고, 믿고 기다려주기 위해서는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오로지 '나'만의 정신적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회사를 다닌다.


때로는 내가 미쳤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아픈 아이를 두고 회사를 다니나 싶을 때도 있지만 아침이면 헤어지기 아쉽고, 저녁이 되면 만남이 더 반가운, 애틋한 엄마와 아들로 살고 있다.  


서로가 한 몸처럼 엉켜 붙어서 아이가 마치 ‘나’인 것처럼 그날 그날, 아이의 발달 피드백에 따라 웃고 울고를 반복하던 날들은 이제 안녕.  


학교가는 길, 표정연습으로 시작하는 행복한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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