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이자 1,300만 원 vs 200만 원
회사 동기 형들과 커피 한 잔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대출 이야기가 나왔다. 듣고 보니 전부 대출이 있다. 이자를 얼마나 내는지 서로 묻는다.
보통 이럴 때 나는 대충 둘러댄다. 회사에서 투자 이야기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 200만 원 정도 내는 것 같은데?"
형들이 깜짝 놀라며 생활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형들이 놀라는 모습에 내가 더 놀란다. 돈 그릇의 차이를 실감한다.
돈 그릇은 사람마다 다르다.
실제 나는 한 달에 1,300만 원 수준의 대출 이자를 내고 있다. 그 부담감이 내게는 일상이다.
언젠가부터 돈을 보는 눈도 감내하는 크기도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숫자다. 그런데 지금은 감당한다. 견디고 있다. 그릇은 그렇게 커졌다.
사람마다 각자의 단위가 있다. 돈의 단위, 걱정의 단위, 목표의 단위 등 지금 내가 무겁게 느끼는 것이 누군가에겐 상상도 못 할 단위일 수도 있다.
반대로 지금 누군가가 버티고 있는 그 숫자가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단위일 수도 있다.
결국은 익숙함의 문제다. 두려움은 낯설어서 생기는 것이고, 버팀은 익숙함 속에서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누구나 그릇이 큰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실제 대출이 늘어날 때마다 겁이 났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자 합계를 보고, 밤새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당하는 법을 배웠다.
버텨보니 알겠더라.
이자보다 무서운 건 내가 가진 그릇을 너무 작게 잡는 마음이었다. 지레 겁먹는 마음, 내가 할 수 없을 거라 단정 짓는 태도가 내 확장을 막고 있었다.
지금도 매달 이자를 낸다. 계좌 잔고가 줄어드는 날이면 한편으론 그만큼 자산을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수익이 없는데 이자를 내고 있다면 위험하다.
하지만 우량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시간을 녹이고 있다면 그 이자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돈이 아닌 시간을 투자하는 셈이다. 당장은 남는 게 없어 보여도 결국은 숫자로 돌아온다.
그걸 믿고 오늘도 이자를 낸다.
돈 그릇이 커감을 느낀다.
돈 그릇은 스스로 키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