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by 배부른기린

나는 지금까지 새 차를 사본 적이 없다.

20대 이후 몰았던 차 3대 모두 누군가에게서 넘겨받은 중고차였다.


몇 년 전, 한 번쯤은 새 차를 몰아볼까 하는 마음에 대기를 걸어둔 적이 있다. 차례가 다가올 즈음, 결국 취소했다. 마침 부동산 하락기였다. 자산 가격이 떨어지니 소비 앞에서 한 번 더 멈칫하게 됐다.


금리가 오르고, 대출 이자는 늘어났다. 지갑을 여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소비를 주저하니, 옆에 있는 와이프가 신경 쓰는 건 당연하다. 자산 가격이 떨어지고 경제 위기가 다가오면 소비를 줄여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반대로 자산 가격이 오를 때는 과감히 소비를 했었나?


그렇지도 않았다. 그 시기엔 풀 레버리지를 일으켜 오르는 자산을 잡으러 다녔다. 이래도 저래도 내 통장 잔고는 늘 바닥을 기었다. 원인은 달라도 결과는 같다.


이렇게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내가 과연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을까? 아파트를 몇 채 가져야 만족할 수 있을까?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내 이름으로 등기를 치면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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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집단은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100억을 가지면 200억을 원하고, 아파트를 가지면 건물을 갖고 싶어진다. 목마름과 배고픔은 채우는 만큼 더 커진다.


부를 쌓아가는 행위가 행복과 비례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큰 충격이나 깨달음이 오지 않는 한, 욕심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머리로는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리는 여전히 쫓기듯 바쁘게 움직인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 충분히 벌었잖아.”


맞는 말이다. 지방에 내려가 자가로 살며, 일을 줄이고도 살아갈 수준은 된다. 그러나 살다 보면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생긴다. 사회적 지위, 주변의 인정,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솔직히 말해 으스대고 싶은 욕망까지 말이다.


이런 감정들은 지극히 사람다운 것이지만, 동시에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을 더디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들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며, 그 시선을 위해 더 열심히 쳇바퀴를 돈다.


문제는 그 속에서 진짜 행복을 느끼는지, 아니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 순간에만 만족을 느끼는지 자신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확신이 없다.

다만 하나는 안다. 경제적 자유로 진정한 행복을 찾고 싶다면, ‘경제적 자유’보다 먼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자유를 얻게 된다면 경제적 자유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1억 원 이어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어렵다. 나 스스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내 멘탈이 그 정도로 성숙하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기록해 둔다.


행복한 경제적 자유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될 것이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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