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고생을 해봐야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고생을 사서 하지 않아도 단단해진다

by 배부른기린

나는 굴곡진 삶을 살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는 아빠와 전업주부였던 엄마 밑에서 자랐다. 감사하게도 밥을 굶을 일은 없었다. 학비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가정은 단출했고 씀씀이는 소박했지만, 부족함을 느끼며 살지는 않았다. 늘 감사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런 나를 두고 아빠는 늘 걱정하셨다. 당신이 보시기에는 나는 고생을 몰라보고 자란 아들이었다. 험한 세상에 나가 악착같이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순둥이처럼 보였던 것이다. “너는 세상 물정을 몰라서 큰일이다”라는 말은 종종 내 귓가에 맴돌았다.


세월이 흘러 사회생활 십수 년이 지났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사회를 알아가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당황하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겪으며 화가 치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단단해졌다. 지금은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빠의 눈에는 여전히 부족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방식대로 삶을 꾸려가고 있다.


아빠도 이제는 인정하신다. 예전처럼 노골적으로 걱정만 하시지 않는다.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말이 가끔 들려온다.


다만 그 자리를 대신해 또 다른 걱정을 내놓으신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의 걱정은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식이 철들면 부모는 손주 걱정을 하고, 손주가 크면 또 그다음을 걱정한다. 걱정은 부모의 숙명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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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흔히 듣던 말이 있다.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고생이 단단한 성품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고생을 사서 하지 않아도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삶은 결국 자기 몫만큼의 고단함을 자기 속도로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일찍 철이 든다.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빠르게 성숙한다. 누군가는 비교적 늦게 철이 든다. 남들보다 천천히 깨지고, 천천히 배우며 세상과 맞닿는다.


중요한 건 빠르냐 늦으냐가 아니라 결국 자기 속도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너무 빠르게 성숙해질 필요는 없다. 너무 늦게 철들까 봐 조급해할 이유도 없다.


나는 지금도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방식이고, 나의 속도다. 굴곡진 삶은 아니었지만 그 나름의 고단함이 있었고, 그 고단함은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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