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을 경매로 사면 복이 달아나?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결정했다.

by 배부른기린

어느덧 서른이 넘었다.


입사한 지 몇 년이 흘렀고, 직장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며 지냈다. 그렇다고 흥청망청 쓰며 놀지 않았다. 이미 투자해 둔 재개발 빌라가 있었고, 원리금을 계속 갚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시간은 빨리 흘렀다. 결혼을 할 시기가 다가왔다. 지금의 와이프와 머리를 싸매고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신혼집이다. 어디로 구할 것인가?


회사를 다녔던 우리는, 출퇴근의 교집합인 성동구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2014년 당시 서울은 심각한 전세난이었다. 뉴스에서도 자주 다루곤 했다. 남의 일이라 여겼던 전세난을 직접 겪게 된 것이다.


막상 직접 구해보니 체감이 달랐다. 전세 매물은 말 그대로 씨가 말라 있었다. 부동산마다 전화를 돌리고 직접 찾아가도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없어요. 요즘 진짜 없어요.”


전세가 없으면 매매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매매 물건도 없었다. 어쩌다가 매물이 한 개 나오면 비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부동산 사장님들도 말끝마다 “지금 아니면 또 없습니다”를 달고 다녔다. 부동산 사장님이 그렇게 말하면 사는 것이 겁이 났다. 몇 억짜리 집을 갑작스레 결정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계속 부동산을 다니던 어느 날, 자주 들르던 한 공인중개소에서 사장님이 조심스레 묻는다.


“경매로 나온 집 있는데, 관심 있으세요?”


당시 나는 경매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뉴스에서 본 단어, 가끔 책에서 본 키워드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다. 선택지가 없다. 선택을 해야 한다.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수업료를 낸다는 생각으로 컨설팅 비용을 지불했다. 그리고 경매 절차를 밟았다.


해당 물건의 채무자는 현재 물건지에 살고 있는 집주인이었다. 본인집을 담보로 근저당을 잡았지만,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대출을 상환하지 못했다. 때문에 은행에서 경매로 넘긴 것이다. 권리 문제는 없으니 입찰 금액만 고민하면 된다. 입찰일까지 시세 조사를 하며 얼마를 써낼지 고민하기로 했다.


입찰을 하러 간 법원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나이 많으신 어른들이 경매지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컨설팅을 해주시는 사장님과 같이 입찰표를 작성했다. 실수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제출했다.


1시간 뒤 낙찰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긴장감 속에 내가 입찰한 물건 차례가 다가왔다. 이름이 불린다. 내 이름이다. 낙찰이다. 기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신경이 곤두서있다. 보증금을 법원에 맡기고 영수증을 받았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낙찰을 받았다. 실거주할 생각으로 남들보다 높게 쓴 것이 주효했다. 낙찰을 받으니 이제 무서울 것이 없었다. 명도 협상을 바로 시작했다. 운이 있는 것인지 명도는 수월했다. 이런 게 명도인가 싶을 정도로 한 달 안에 마무리가 되었다. 점유자는 약속한 날에 맞춰 이사를 나갔다


이제 정말 내 집이 되었다.




내가 낙찰받은 이 집은 성동구에 위치한 구축 아파트였다. 경락 잔금 대출로 70% 까지 대출을 받았다. 인테리어를 했다. 가구를 들렸다. 예쁜 신혼집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결혼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오랜만에 시세를 보니 1억이 올라있었다. 불과 2년도 안돼서 말이다. 다음 해 또 1억이 올랐다. 무섭게 계속 올랐다. 시세를 자주 검색하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뿐 아니라 서울 전역이 오르고 있었다. 입사 첫해 사둔 재개발 빌라도 떨어졌던 가격을 회복했다.


부동산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로 한다. 책이 아니라, 현실의 집이 나를 공부하게 만든 것이다.


재개발로 시작한 첫 투자는 실패였지만, 경매로 이어진 두 번째 투자는 운이 따랐다. 무지하게 시작했지만, 선택했고 실행했다. 그 경험은 내게 자산을 안겨줬을 뿐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바꿔놓았다.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투자의 프레임이 잡히기 시작했고, 투자자 커뮤니티, 경매 카페, 부동산 블로그를 기웃거렸다.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을 쪼개며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조금씩 발을 담갔다. 그 시작점은 나의 신혼집이었다.


아직도 그 집을 보유하고 있다. 언젠가는 매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집은 내게 가장 큰 자산이고, 가장 깊은 배움을 준 고마운 물건이다.


사람들은 종종 투자는 돈을 불리는 일이라 말한다. 맞다. 하지만 내게 있어 투자는 생각을 바꾸고, 삶의 관성을 바꾸는 일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 시작은 아주 작고, 불안한 선택에서 비롯됐다.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은 정말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용감한 선택을 했던 32살의 나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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