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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서 May 21. 2024

추억 풍경

충격, 내 머리카락이 잘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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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세수부터 머리카락 빗는 일 등은 할머니에게 이양되었다. 할머니는 솜씨가 좋아서 요리도 잘 하셨고, 머리카락을 만지는 솜씨도 좋았다. 내가 일곱 살 되던 해, 탐스런 머리카락이 단발로 싹둑 잘리던 그날까지 할머니는 날마다 내 머리카락을 따주셨다.      


유난히 머리카락이 많았던 나는 허리까지 오는 새까맣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따서 위로 틀어 올려 토끼 귀처럼 예쁘게 묶어 주셨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선녀 머리를 연상케 하는 머리모양을 만들어 주셔서 나는 그 머리모양을 가장 좋아했다. 도끼빗, 꼬리빗, 참빗을 사용해서 머리카락을 빗고 따는 동안에는 몸을 비비 꼬며 지루했지만 기다림 끝에 완성된 머리모양은 탐스럽고 보기 좋아 엄청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부엌과 수도가 사이 마당에 놓여있는 나무 의자에 강제로 앉게 되었다. 어깨 위에는 나일론으로 된 보자기가 둘러 처지고, 빗과 가위를 든 엄마가 등장했다. 의자 주변에는 할머니, 언니들의 눈동자가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발버둥 쳐도 도망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당시 우리 형제들의 머리카락은 엄마가 잘라주셨다. 엄마도 손재주가 좋았던지 주기적으로 마당에 나무로 만든 의자를 놓고 미용실을 열었다. 우리 형제들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의 머리카락도 잘라주셨다. 다만 그날은 나 혼자만 머리카락을 자르게 되었다.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의자에 앉힌 채 길고 탐스럽던 머리카락이 단발로 댕강 잘리는 일을 당했다.      


내 머리카락이 잘려 마당에 까맣게 흩어질 때 나는 몇 번이나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던 머리카락의 간지러운 듯 꺼끌꺼끌하던 느낌과 따끔거림이 견디기 힘들었다. 매우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당시 아이들의 대표적인 머리모양, 60~70년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단발머리를 하게 되었다. 이마에는 눈썹 위에 일자로 잘린 앞 머리카락이, 옆과 뒤의 머리카락도 귀가 살짝 보이도록 일자로 잘린 단발머리를 한 시골 아이가 되었다. 


나는 틀어 올린 양 갈래 머리모양이 다른 아이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특별함으로 여겼던 거 같다. 동네에는 내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가 없었고, 언니들만 있었는데 나처럼 긴 머리카락을 가진 언니들은, 나와 네 살 차이의 당고모밖에 없었다.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그 무리에 끼려고 노력하던 꼬맹인 나에게 긴 머리카락은 나름 자부심이었는데 누구나 하는 머리모양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나중에 커서 들었다. 밖에서 뛰어놀다가 들어오면 나는 계속 머리를 긁었단다. 하도 머리를 긁어서 엄마가 머리카락을 들어보니 머리에서 이가 기어다니고, 머리카락에는 서캐가 하얗게 붙어 있었단다. 땀을 내며 뛰어놀아 축축해지고 숱이 유난히 많은 나의 두피는 이가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던 터다. 당시에는 약이 귀하고 독해서, 그리고 그놈들이 너무 많아 손쓸 수 없는 상태여서 엄마는 긴 머리카락을 자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때 잘린 내 머리카락은 동네를 오가는 박물장수가 너무 좋아하면서 가져갔단다.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앞자리에 앉은 아이는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다녔다. 나는 뒷자리에서 곱게 따진 그 아이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어 장난을 쳤다.  ‘나도 한때는 저런 머리모양을 하고 있었지’라는 부러움에 한 행동이었을까.     

 

나는 그 장난으로 호된 경험을 했다. 앞자리 아이는 일 년 늦은 입학을 해서 나보다 한 살 많았다. 그 아이의 동네에는 같은 나이 친구들이 대여섯 명 있었고 그녀들은 2학년이었다. 하교 중이던 어느 날, 나는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옆 동네 사는 앞자리 아이의 친구들이었다. 그녀들은 나를 가운데 세워놓고 위협했다. 내가 앞자리 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며 괴롭혔으니 자기네 동네 여자아이들과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동네는 우리 동네보다 커서 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꽤 많았다.      


그 후로 나는 그녀들의 눈치를 살피며 좀 늦은 하교 시간을 택해 집에 가야 했다. 그녀들의 기세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는 그 동네 여자아이들과 몇 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한 친구와는 초등학교 내내 말을 하지 않은 채 지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같은 반이 되어서야 겨우 어색하게 말할 수 있었다. 친구는 나와 왜 말을 안 하고 지냈는지 영문도 모른 채 몇 년을 보냈다.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 친한 사이가 된 친구에게 그때 일을 말했더니 자기 동네 언니들이 기가 셌다며 웃었다.     


내 길고 땋아 올린, 마치 내가 공주 같았고, 선녀 같았던 머리카락의 추억은 단발머리의 충격으로 끝이 났다. 이후 나의 헤어스타일은 단발과 커트를 오갔고 조금 길면 어깨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어릴 때보다 얼굴형도 많이 변해서 머리카락을 기르지 못한다. 오랫동안 짧은 머리를 고수해서 헤어스탈일이 고정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도 헤어숍과는 거리를 먼 편이다. 외모를 가꾸는 일에 관심이 별로 없기도 하고, 서툴다. 헤어숍에서 머리모양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힘들어한다. 기본적으로 세련된 미적 감각에 대한 시각이 부족한 사람. 그것이 불편하거나 크게 마음 쓰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외모를 잘 가꾸며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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