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보다 업무가 우선

커리어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마침표가 없다

by 이민서

이사 한 지 한 달 된 우리 집은 신축이었지만 남편이 인테리어까지 마친 상태라 깔끔하고 예뻐서 좋았다. 문제는 공사 후 냄새가 말끔히 빠지지 않아 아기에게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더구나 겨울이라 환기를 시키지 못한 상태여서 집에 들어서면 코끝이 시큰하고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집안 곳곳에 숯을 놓고 공기 정화 식물들을 들여놓았지만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그런대로 견딜만했지만 아기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을까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의 팔꿈치 안쪽 접히는 부분은 아토피 증상이 나타났다. 너무 어려서 약을 바르기도 쉽지 않았고 혼자서 끙끙 거리며 아기의 아토피를 어떻게 해 볼까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보냈다.


출산휴가 90일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해

그러던 어느 날, 담당 임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인사고과 철이 다가오니 복직을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출산휴가가 2주일이나 남은 상태에서 나는 복직을 했다. 향후 회사생활을 위해 출산휴가 끝날 때까지 쉬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 시절에는 육아휴직은 고사하고 출산휴가 90일도 다 사용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2주 앞서 조기복귀를 했으나 인사고과는 좋지 않았다. 출산을 위해 입원했던 날, 내가 진행하던 사외보가 외부 기관 협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는 얘기를 후배로부터 들었던 터라 그래도 조금 기대를 했지만 나는 그저 출산휴가 중인 직원일 뿐이었다. 이의신청을 하지도 못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면서도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너무하네. 출산이 업무에 지장을 준 것도 아니고 출산 전날까지 출근해서 박스를 나르며 일했는데’라며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혼자서 속앓이를 했을 뿐이었다. 그때 받은 인사고과는 회사생활을 하는 내내 내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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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에, 주말출근까지 이어지는 업무 홍수

조기복귀를 해서 내가 맡은 업무는 출산 휴가 전에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그대로 이어가는 일이었다. 출산 휴가를 다녀오면 책상이 빠진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들리던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창립기념일에 맞춰 출간돼야 하는 회사의 25년 역사를 정리하는 사사였다. 창립기념일이 5월인지라 2월 중순에 복귀를 했으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를 하면서 미진한 부분은 직원들 인터뷰를 진행하며 야근이 계속되었다. 일찍 퇴근하면 밤 10시였고, 외부 자문교수를 모시고 하는 업무라 회식이 있는 날은 더 늦기도 했다. 아기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다. 주말에도 나가서 일하는 날이 잦았다. 매일같이 야근에 주말에도 출근하는 나를 보며 친정엄마는 밤에도 아기를 데리고 주무시겠다고 했다. 늦게 들어와 잠자는 아기 옆에서 잠만 자는 형국이었던 나는 몸이 피곤하니 새벽에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아기는 할머니와 한 방에서 먹고 잤다.


죄책감뿐 행동은 바꾸기 어려워

아기가 백일이 조금 지난 어느 날, 오랜만에 주말을 맞아 아기와 함께 보낼 시간이 났다.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나였지만 아기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거실에서 아기를 안고 놀다가 아기가 내 얼굴을 할퀴었다. 아기의 손톱은 얇고 날카로워 자다가 자기 얼굴을 긁는 일이 있어서 보통은 손 싸개를 해주었는데 그날은 내가 데리고 놀면서 손 싸개를 빼놓았던 터였다. 아기에게 얼굴을 할퀴고 나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할퀸 자국이 아파서가 아니라 아기에게 거부당한 느낌이 훅 밀려왔다. ‘아기와 함께 있는 시간이 없어서 아기가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나?’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도 들었다.

교육회사에 근무하다 보니 육아서를 많이 읽었던 나는 영유아기의 아기와 애착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아기와 신체 접촉이 많이 부족했고, 아침에만 잠깐씩 얼굴을 보는 정도였다.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지금이라면 ‘아기가 팔을 움직이다 내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상처가 났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내 커리어가 중요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직장인으로 사는 것을 좋아했기에 필요하면 언제든 야근도 하고 회식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을 ‘아기에게 좀 더 안락한 경제적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는 합리화로 일관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아기 엄마가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너무 이기적인 엄마인가’라는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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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은 양보다 질이라는데 나는 여전히 하숙생

마음의 상처도 잠시 뿐, 그 뒤로도 나의 야근은 계속되었다. ‘5월까지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를 또다시 발동시키면서 나는 변하지 않았다. 아기는 외할머니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에 살이 통통하게 오르며 잘 컸다. 아기가 6개월이 넘어서까지 나의 야근은 계속되었고, 프로젝트 결과는 실패였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밤낮으로 정리했으나 그룹회장의 제가를 받지 못해 몇 권만 제본을 해서 가제본 형태로 남겼다. 결국 나는 프로젝트 전에 하던 업무로 복귀하지 못했고, 팀 이동과 함께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다. 비로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야근을 줄이고 아기와 시간을 더 보내는 건데’라는 생각을 했다.

육아전문가들은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보내느냐의 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에게 온전히 몰입하여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면 20분으로도 아이의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아이의 신체발달과 정서적 안정을 위해 20분 만 이라도 제대로 놀아주자는 생각은 늘 했지만 피곤하다는 핑계가 있었고, 집안일도 친정엄마에게 의존했다. 겨우 아침밥만 준비하는 정도가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친정엄마가 준비해 둔 반찬으로 아침밥을 준비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나의 생활은 오랫동안 계속됐다. 나는 결혼과 출산을 하고 나서도 결혼하기 전 혼자 살 때나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저 한 집에 사는 식구만 늘었을 뿐이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나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가정 내에서 나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고 출퇴근을 반복하는 일개 직장인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스스로 믿고 있었다.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개선할 생각도 하지 않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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