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발달이 더딘 거 외에 아이는 부족한 엄마에도 불구하고 잘 먹고 잘 잤다. 다른 아이들이 걷는 시기인 9개월에 배밀이를 하며 기어 다녔고, 15개월이 되어서야 걸었지만 우리는 조바심을 내지 않고 기다렸다. 때가 되면 걷고 뛸 것을 알기에 아이의 속도를 지켜보며 변화를 보일 때마다 박수로 환호하며 기뻐했다. 반면 말은 빨라서 겨우 기어 다니고 앉아서 놀 수 있을 무렵에 말문을 열었다. 아이가 말한 첫 단어는 ‘아빠’였다. ‘엄마’가 아니고 ‘아빠’라니, 나는 또 한 번 섭섭함을 느끼며 시린 가슴을 애써 진정시켜야 했다. 아빠가 아이랑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더 정성껏 돌보는 것을 알면서도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세상의 눈에 띠는 것들에 아이는 수십 번씩 같은 질문을 한다
말문이 트이고 15개월에 걷기 시작하자 아이의 단어 사용은 급격하게 늘어났고 16개월에는 ‘저게 뭐야’를 입에 달고 살았다. 보이는 거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게 뭐야?’를 묻는 아기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비고 기쁨이었다.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는 일로 시간을 다 보내야 했지만 내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퇴근 후나 주말뿐이라서 힘든 줄 모르고 기꺼이 대답을 해주며 ‘이건 시계, 짹깍짹깍 소리가 나고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물건이야.’라며 설명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사정이 달랐다. 아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집안 살림에 아이 식사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끝도 없는 아이의 질문은 외할머니의 에너지를 소진 시켰다. 그래도 외할머니는 아이의 질문을 그냥 넘기지 않으시고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셨다. 아이는 점점 어휘가 늘어나며 문장을 구사하게 되었다.
아이의 언어도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아이가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집에서 아이와 놀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선반 위에 걸려 있는 현관 열쇠를 가리키며 ‘쇳대, 쇳대’를 반복했다. 남편과 나는 박장대소를 하며 폭소를 터뜨렸다. 21세기에 갓 두 돌 된 아이의 입에서 ‘쇳대’라니……. 아이는 집에서 놀다가 외할머니 등에 업혀 밖에 나가 동네를 한 바퀴 돌기도 하고 또래 아이들을 만나 놀기도 했던 터라 밖에 나가려면 현관 열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쇳대’는 충청도에서 나고 자란 외할머니 용어로 아이의 언어 환경은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외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작은 아기의 입에서 발음되는 ‘쇳대’는 시공간을 넘어 집안을 울리는 웃음을 선사했다.
‘쇳대’는 사투리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번은 아이의 입에서 ‘쓰봉’이라는 말이 나와서 우리 부부는 아연실색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그래도 자주 듣던 단어였지만 커서는 친정엄마한테도 잘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다. 친정엄마는 아이와 있을 때 사투리나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일본식 단어들을 종종 사용하고 계셨었나 보다. 외할머니도 아이의 입을 통해 나오는 ‘쓰봉’이라는 단어에 적잖이 놀라셨는지 그 뒤로는 사용하지 않으셨다.
유아어의 유통기간은 짧다
10개월 전후로 말문이 트인 아이는 흔히 유아들이 사용하는 혀짧은 소리나 부정확한 발음을 하지 않았다. 발음이 정확하고 말하고자 하는 걸 분명하게 전달하는 언어적 재능이 있었다. 물론 우리 가족은 특별히 유아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유아어의 유통 기한은 매우 짧다.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아이들의 언어 능력은 초스피드로 발달해 여섯 돌이 되면 8,000~14,000개의 단어를 습득한다고 하니 말문이 트인 시기가 12개월이라면 매일 5~8개의 단어를 배운다는 거다. 여섯 살 이후에도 언어 발달은 계속되어 하루 22개 정도의 단어를 배운단다. 어디선가 이런 내용의 논문을 봤던 기억이 있어서 우리 가족은 유아어가 아니라 어른들이 사용하는 일상어를 사용했다.
말수가 적은 엄마의 선택은 동요와 독서다
평소 아이의 모든 발달 영역이 유전의 영향보다 환경의 영향을 1퍼센트 정도 더 받는다고 나는 생각했다. 당연히 아이의 어휘발달도 언어 환경이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가장 말을 많이 한 엄마와 가장 적게 한 엄마의 아기들이 어휘량에 있어서 평균 4배 차이가 났고 많게는 10배까지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으로 보아 아이들의 어휘량은 엄마가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가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나는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고 친정엄마도 과묵하신 편이다. 내가 선택한 언어 환경은 동요와 책이었다. 말을 하기 전에는 운율이 있는 전래동요를 주로 들려주었다. 당시에는 아이의 지능발달에 모차르트의 음악이 좋다고 해서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려주었는데 클래식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전래동요를 함께 들으며 부르기를 즐겼다. 말문이 트이면서는 감각을 깨우고, 동식물을 구별하는 책을 통해 아이에게 언어 환경을 제공했다.
아이가 36개월이 되어갈 무렵,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엄마, 저거 ‘입’자야.”라고 소리쳤다. TV에서 9시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고 한자 입구(口)자가 자막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아이가 ‘입’ 글자를 알아본 것이다. 드디어 아이가 글자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가족은 너무 기특하고 신기해서 열렬하게 박수를 보냈다. 주위의 중요한 사람들이 아낌없이 돌보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수많은 스킨십을 하고, 사랑하고, 끊임없는 지지를 받으며 자의식이 형성되는 시기에, 아이는 말하고 글자를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더 견고하게 자아를 발달시켜 나갈 것이기에 아낌없는 환대를 보냈다.
말문이 트인 아이는 모두 천재로 보인다
아이의 어휘력과 표현력은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취월장했다. 겨울이 되어 성당 가는 길에 추우면 춥다는 말 대신 “엄마, 바람이 자꾸만 입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워낙 오감각이 예민한 아이는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에도 놀라서 잡고 있던 손이 오그라들면 “엄마, 나는 겁쟁이인가 봐”라고 말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우리 아이가 언어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들 바보 엄마의 착각은 그 후로도 얼마 동안 계속되었다. 외출했다가 집에 가는 길에는 골목길을 가면서 한약 냄새가 난다, 밥 냄새가 난다, 쓰레기 냄새가 난다며 동네에 어떤 건물에 어떤 상점이 있는지를 알게 했고, 무슨 냄새가 나는지 일일이 말을 하며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긴 시간이 걸렸다.
아이는 걸으면서도 오감을 사용해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길은 기찻길이었다. 탈 것 중에서도 기차에 흠뻑 빠져 있던 아이는 기차를 타겠다고 해서 주말이면 중앙경의선을 타고 여러 차례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을 방문했고, 인적이 드문 철원의 월정리역까지 가기도 했다. 기차는 타고타고 또 타도 계속 타고 싶어 해서 곤란을 겪을 때도 있었다. 한 번은 대전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또 기차를 타겠다고 지하철역 입구에서 떼를 쓰는 것이었다. 짐도 있고, 사람도 많은 공공장소에서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아이를 진정시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결국 지나가는 아저씨가 보다 못해 으름장을 놓아 겨우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아이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탐구 과정은 그 자체로 선물이고 기쁨이었다. 무엇을 해도 부모에게 존재 자체로 기쁨을 주는 아이, 그 기쁨의 순간을 자꾸 꺼내 봄으로써 나는 평생을 그 추억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성장을 하면서도 순간순간 기쁨을 선사하지만 호기심으로 세상을 탐구하며 나아가는 순수한 모습은 다섯 살까지가 초절정을 이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