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인형과 한 몸이 된 너

by 이민서

아이가 태어나고 지인으로부터 인형 두 개를 선물로 받았다. 하얀 얼굴에 노란 치마를 입은 토끼인형은 토순이, 베이지색 얼굴에 까만 눈동자가 유난히 고양이스런 노란줄무늬 옷을 입은 고양이 인형은 고돌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토순이와 고돌이 둘은 선반 위에 자리 잡은 장식품일 뿐이었다.


장난감은 한 가지를 오래 가지고 놀 수 있도록

나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많이 사주지 않았다. 신생아 때는 오감을 발달시키는 딸랑이와 동물의 소리를 내는 피아노 등 최소한의 것들만 구매하고 대부분 대여를 해서 2주에서 한 달 정도 놀고 나면 바꿔주는 식이었다. 영유아 아기들은 오감 발달도 빠르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보이기 때문에 굳이 많은 장난감을 사서 쌓아두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아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자주 가지고 노는 것들을 눈여겨보다가 사주는 식이었다. 한 가지를 가지고 오래오래 놀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물건의 소중함도 알게 하고 한 가지를 마스터하는 방식도 익히게 하기에 좋았다. 다섯 살까지는 집안이나 밖에서 타고 놀 수 있는 자동차, 미끄럼틀이, 입학하기 전까지는 젠가와 레고 블록(그 시절에는 한 가지 형태를 만들 수 있는 블록이 아니라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크기의 블록이었다), 미니어처자동차 서너 개가 전부였다.


cat-323262_640.jpg

고돌이와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아이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의 손에는 토순이와 고돌이가 자주 들려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를 지켜보았기 때문일까? 아이는 부드럽고 포근한 토순이와 고돌이 인형을 좋아했다. 토순이와 고돌이는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닌 아이의 동생이고 가족이었다. 아이는 치마를 입은 토순이보다는 스트라이프 옷을 입은 고돌이를 더 좋아했다. 고돌이는 아이가 가는 곳은 어디나 함께 했다. 특히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의 품에는 항상 고돌이가 안겨 있었다. 추운 겨울에도 외투 안에서 얼굴만 내민 고돌이와 아이의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던 아이는 고돌이를 애지중지했다. 아이에게 고돌이는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마음의 안정제였다. 너무 오랫동안 주무르고 품에 안고 다녀서 꼬질꼬질해지고 까만 눈동자는 스크래치가 생기고 하얗게 벗겨져도 고돌이는 아이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고돌이는 아이의 애착인형이었던 것이다.


제2의 엄마이자 이행 대상인 애착물건

보통 아이들은 생후 6개월 정도 지나면 부모와 타인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면서 낯가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애착이 형성되어 부모나 주양육자와 떨어지게 되면 아이들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아기에게 애착 인형 혹은 애착 물건이 생기게 되는데 이는 아이가 독립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 엄마나 주양육자와 교감하며 세상을 알아가던 아이가 조금씩 정서적으로 독립하면서 엄마가 아닌 특정 물건에 집착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애착 물건을 심리학 용어로 Transition object 이행대상, 중간 대상이라고 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혹은 주양육자)를 대신할 대상을 찾아 엄마와의 관계를 그 대상에게 부여하고 엄마가 없을 때도 그 대상에게서 안정감을 찾는 제2의 엄마라고도 할 수 있다. 커 가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갈 때 불안함을 해소시키거나 진정시키기 위해 본인에게 친숙한 애착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이는 만 5세 이전의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애착 물건은 아이에게 엄마가 되기도, 친구가 되기도, 불안을 잠재우는 역할을 해주는 존재이다.


양육자도 애착 물건을 소중히 다루어 주어야

낯가림이 심하고 불안감을 느낀다고 해서 바로 애착 대상물을 만들어주는 것보다는 부모와 충분한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먼저다. 12개월 이전의 너무 이른 시기에 애착 대상물이 생기면 애착 대상물에 집착을 할 수도 있다. 부모나 주양육자와 충분한 애착을 형성한 후에 애착 대상물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애착 대상물은 여러 가지가 있다. 특정 장난감이나 베개, 이불 등 평소에 자주 접하는 물건에 애착을 갖는 경우도 많다. 보통은 아기 때부터 부모의 의도가 담긴 물건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불이나 베개 등 아이가 가지고 다니기 어려운 대상물이라면 교체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애착 대상물을 고를 때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애착 대상물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항상 아이의 곁에 두는 것이 좋다. 특히 남자 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다닌다고 놀린다거나 하는 것은 아이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애착 대상물은 말 그대로 아이가 어딜 가든 가지고 다닐 만큼 애착을 많이 가지는 대상으로 억지로 애착 물건을 떼어내려고 하거나 아이 몰래 버리는 행동을 하면 절대 안 된다. 엄마이자 친구이자 안정제인 아이의 세계가 버려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애착 물건은 아이의 손에서 떨어질 틈이 없는 만큼 세탁이 쉬워야 한다. 단추나 장신구가 있는 제품은 피하고 부드러운 소재여야 한다. 잦은 세탁에도 변형이 되지 않는 재질이면 더 좋다. 크기는 아이가 가지고 다니기 편한 정도가 좋다. 주양육자도 아이의 애착 인형을 소중히 다뤄주어야 한다.


cat-1941089_640.jpg

성인도 가끔은 애착 대상물이 필요해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애착 인형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그때 애착 인형이 필요했었다. 집을 떠나 언니와 자취를 하면서 왠지 모르게 두렵기도 하고 외로워서 커다란 곰인형이하나 있었으면 했다. 드라마에서 남자친구가 선물하는 곰인형이 부러웠을 수도 있다. 애착 대상물은 어른들도 가끔씩 필요할 때가 있다. 편안한 잠들기를 위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그 이유가 무엇이든 나를 안정시켜주는 물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거다. 하물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떼는 아이들에게 그 소중함은 말해 무엇하랴.

지금도 우리 집에는 까만 눈동자가 반쯤 벗겨지고, 터진 곳을 기워준 꼬질꼬질한 고돌이가 아이 방에 있다. 아이는 중학교 때 반려견을 키우게 되면서 고돌이는 아이의 책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족한 엄마에도 불구하고 너는 기쁨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