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라.
2주 동안 베이비시터의 도움이 끝나고 우리는 회사 근처로 이사를 했다. 출산휴가가 끝나면 복직을 해야 했고, 친정엄마의 요청도 있었다. 복직을 위해 아기를 키워줄 사람이든 기관이든 찾아야 했는데 신생아를 맡아줄 기관은 마땅치 않았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양육자를 찾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입주 도우미를 들일 수도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내 처지를 안타까워하던 친정엄마가 아기를 키워주겠다고 하셨다. 대신 집이 회사 근처에 있으면 아기를 돌봐도 마음이 놓일 거 같다는 거였다.
딸의 사회생활을 돕고 싶었던 엄마
친정엄마가 아기를 돌봐주시면 나에게는 말할 나위 없이 안심되는 일이었지만 평생을 시골에서 살아오신 분이 서울살이를 어떻게 하실지 걱정도 됐다.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고향을 떠나 ‘작은 집에서 오로지 아기만 돌보며 하루 종일 갇혀 지내야 하실텐데’라는 마음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서울살이 중에서도 ‘딸집에 사는 건 못 할 노릇’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양반이 외손주를 키우겠다고 말씀하기까지 얼마나 마음속으로 갈등을 일으켰을지 짐작만 할 뿐이었다.
“서울에서는 맞벌이를 해야 아이 키우며 살아갈 수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여자도 사회생활을 해야 경제적으로든 마음으로든 당당할 수 있고 무엇보다 갓난아기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라는 친정엄마의 마음을 나중에 들었다.
출산일에 맞춰 서울에 올라오셨던 친정엄마는 오빠 집에서 며칠을 머무르신 뒤 시골집 살림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한 달 뒤에 오시마하고 내려가셨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롯이 아기와 단둘이 하루를 지내야 했다. 엄마가 올라오시기 전까지 될 수 있으면 일찍 퇴근을 하겠다던 남편은 잦은 야근으로 늦을 때가 많았다. 결혼 전에 살던 동네라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익숙했지만 한 겨울이라 하루에 한 번씩 아기에게 햇볕을 쏘이기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는 것 외에는 사람을 구경할 수 없었다. 아기를 돌보는 일은 시간을 느낄 수 없으면서 바빴다. 시간 맞춰 우유를 먹이고 아기가 낮잠을 자는 사이 우유병 삶고, 청소하고, 빨래하다 보면 하루가 갔다. 아기는 잘 먹었으나 잠투정이 심한 날에는 안고 재워야 했다. 안아서 잠을 재워도 바닥에 눕히는 순간 눈을 뜨는 바람에 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아이를 가슴에 안고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아기의 따스함은 오래도록 나를 충만하게 했다.
육아는 온전히 나를 내어 놓는 일
하루는 분주하게 지나갔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길었던 것일까. 혼자서 아이를 돌보기 시작한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아이를 안고 창문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하며 멍하게 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회사 근처라 동료들을 집으로 불러 점심식사도 했지만 혼자 아기를 돌보는 일은 나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를 안고 분유를 먹이다가 바닥에 슬그머니 아기를 내려놓고 우유병만 손에 쥔 채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기가 울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벌이진 그 상황에 나는 당황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화들짝 놀라 아기를 안으며 이해할 수 없는 내 행동이 미안해서 혼자 울었다.
‘모유 수유를 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아기를 바닥에 눕힌 채 수유를 한단 말인가? 나에게 모성이란 게 있기나 한 것인가? 앞으로 아기를 어떻게 키우려고 이런 행동을 했을까?’ 죄책감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수치심으로 괴로워하며 전전긍긍하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산후우울증이 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친구도 아기를 벽 쪽으로 밀어 놓고 두세 시간 방치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돌봄의 무능이 산후우울감을 가져와
나는 그때서야 산후우울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기와 단둘이 지내며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느낌이 들었고,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서툰 엄마의 역할이 생기면서 일시적으로 정체감에 혼란이 온 것 같았다. 특히 아기가 이유 없이 울 때나 아기를 목욕시킬 때면 나는 한없이 무능함을 느꼈다. 베이비시터에게 아기를 안는 방법과 목욕시키는 방법에 대해 상세히 배웠지만 아기를 안는 것도 서툴고 아기 목욕을 시키려면 몸치처럼 어설프고 둔한 내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혼자서는 감당을 못해 아기 목욕은 남편과 함께 시켜야 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아기 목욕을 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남편도 서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마음이 놓였다. 작은 아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헤맬 때마다 나는 마음이 복잡했고 한없이 작아졌다.
실제로 우리나라 산모 중 85%가 산후우울감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는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대개 분만 후 2~4일 내로 시작되며 2주 이내로 호전된다. 산후우울감은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이유 없이 우울해지기도 하고, 잠이 잘 오지 않으며, 엄마로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한 마음이 있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10~20%의 산모들은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우울증으로 이행된다. 산후우울증은 자신감이 없어지고, 적극적인 활동도 어려워지면서 자연히 아기를 돌보거나 아이와의 첫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어려움이 생긴다. 일반 우울증보다 혼란스러움, 불안, 환각, 망상 등의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산후정신질병은 0.2~0.5% 정도 발생한단다. 극단적인 사건들로 잘못된 산후우울증에 대한 인식은 피해야 한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
정신건강의학회에 따르면 산후우울감에서 빨리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의 여성임을 기억하라. 처음으로 아기를 낳고, 돌보는 데 집중하다 보면 일상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산후조리와 아기 돌보기에만 사용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위한 간단한 취미 생활이나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출산 후 급격한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어떤 일이든 처음에는 다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라. 처음부터 능숙한 엄마는 없다. 능숙해 보이는 선배 엄마들도 서툰 손길로 당황해하며 첫아기를 대했음을 기억하자. 모성 본능과 아기 돌보기는 별개의 문제다. 당신은 처음 하는 일이 서툴고 어려움을 느낀 것일 뿐, 모성 본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셋째, 모유 수유에 지나치게 스트레스받지 말라. 모유가 우유나 분유보다 영양학적으로 나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유 수유가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분유로도 아기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 줄 수 있다. 모유 수유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강박감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넷째, 주변에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라. 처음 엄마가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만 두렵고 부담스러운 일인 것도 분명하다. 난생처음 하는 아기 돌보기가 어렵고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남편이나 친정 시댁의 가족들에게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해보자.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아이 돌보는 모든 일을 혼자 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자신이 받고있는 스트레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감정을 나누도록 해라. 혼자 힘든 감정을 안고 있는 것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다.
산후우울감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겪으며 놀람과 무능감과 수치심 등 복잡한 감정이 범벅되어 있을 때 친정엄마가 올라오셨다. 나는 오빠 집에서 한 달 동안 산후조리를 더하는 호사를 누렸다. 올케언니는 아기를 안고 목욕시키는 일을 안정감 있게 척척 잘도 했다. 아기는 안정된 돌봄 속에 잘 지냈다. 나 또한 친정엄마와 올케언니의 돌봄을 받으며 산후우울감을 털어낼 수 있었다. 산후우울증에는 주변의 도움 속에 마음의 안정을 취하는 일이 중요함을, 그리고 가족의 지지 속에 온전히 돌봄을 받는 시간이 필요함을 새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