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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Sep 27. 2018

평소 '모범시민'은 아니었으나

불만 가득한 내 삶에 작은 복이라도 받아보려고 선행을 다짐했다.

어릴 땐 고지식한 성격 덕분에 모범 어린이로 자랐다. 하지 말라는 거 안 하고 하라는 건 조용히 했다. 착한 아이라고, '얘는 으른스럽다'는 말을 칭찬으로 들었다. 반항하거나 말을 안 들을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선택지의 모든 게 어른들의 가르침과 지침이었다. 또 그게 그리 싫지 않았다. '착한 어린이'로 크면 기대치 않은 이점이 많았다. 고지식했지만 영악한 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랬던 어릴 때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내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지침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는 재미로 20대를 보냈다. 사춘기가 늦게 온걸까. 하긴 난 뭐든 남들보다 늦었으니까. 예술대학에 들어와 보도듣도 못한 문화와 환경 속에서 나는 내가 지키던 규범과 질서를 일부러 어기며 경험을 쌓았다. 무단횡단도, 쓰레기 슬쩍 버리기도, 그래봤자 이런 작고 소심한 일탈이 고작이었지만 내 규범의 틀이 깨지기 충분했다. '꼭 착하게 살 필요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내 성격도 바뀌길 바랐다. 나이 먹고 하려니 그것도 참 어려웠다. 


그러다 만화 '중판출래'를 보는데, 거기 주인공이 다니는 회사의 멋진 사장님이 그런다. '덕을 쌓고 복이 모이면 그 복을 나는 내 일의 성공에 쓰겠다. 내 모든 운은 중판출래를 위해 쓴다'라고. 


사장님은 늘 일찍 일어나 성실하고 단정하게 살며,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고 자판기의 거스름돈을 거두지 않고 그냥 둔다. 자판기 거스름돈 나오는 칸을 열어보는 노숙자에게 얼마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도박같은 요행을 바라는 일은 절대 손 대지 않고, 혹여나 복권 한 장이라도 수중에 들어오면 마치 벌레를 털어버리듯 내치고 만다. 물론 술과 여자 같은 준수하지 못한 일도 절대 가까이 하지 않는다. 이렇게 금욕적으로 살며 모은 모든 덕을, 자신이 성공하고 싶은 일. 출판 일의 성공으로 몰아 받기 위해서다. 


의미도 없는 치기에 부도덕?하게 살아온 나는 이 부분에서 참, 뭐랄까. 좀 그런 찡한 감정을 느꼈다. 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들인데, 착하게 사는 게 정답이라고 그렇게 배웠는데, 그게 마치 '일거에 무너뜨려야 할, 부패한 관행이나 되는 것'처럼 중국 마오쩌뚱의 홍위병의 마음으로 괜한 오기를 부린 내가 부끄러웠다. 모든 일의 칠 할이 운에 의한 것라고 느끼면서, 그 운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착하게, 성실하게, 내 일을 위해, 남을 돕지는 못할망정 피해는 끼치지 않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도 잊고 있었으니. 이렇게 어리석은 인간이 또 있을까.


오늘 퇴근길 지하철에서 환승통로 계단에 작은 껌조각이 떨어져있었다. 씹다 만 껌을 누가 계단에 뱉어놓았는지, 그 모양새를 바라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사탕 비닐로 껌을 주워 내려와 플랫폼 중간에 있는 일반쓰레기 통에 넣었다. 착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그땐 이게 밟히면 청소하시는 분이 곱절의 노력을 해야 지워질 거 아니냐는 생각이었는데, 어렸을 때 고지식하고 착했던 내가 튀어나온 기분이었다. 참 오랜만에 만난 아이 아닌가. 그 작은 일로 지금까지의 악행?, 모범적이지 못한 행동이 상쇄될까마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덕을 쌓고 쌓으면 내가 복으로 당장 돌려받지 못해도 최소한 큰 화는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신이 있다면 이런 내 행동을 보신 후 두 번 다칠 거 한 번으로 줄여주고, 세 번 억울할 거 두 번으로 줄여주시지 않을까. 나를 위해 착하게 살자. 내가 어쩌지 못하는 운이라면, 그 운을 내가 원하는 곳에 쓸 수 있게 신에게 이쁘게 보이자. 악한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그 마음이라도 가상히 여겨주시실,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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