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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Feb 19. 2019

사람에게, 범죄자에게 직업이란

반복하다 타성에 젖고 기계적으로 하는, 그래야 견딜 수 있는 업무에 대해

얼마 전에 현직 형사와 대화를 하며 신기한 얘기를 들었다. 그건 범죄를 일상으로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새삼스로울 것 없는 것이겠지만 뉴스와 경찰, 조사, 고소고발이 다른 나라 얘기라고 착각하고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충격적인 얘기였다. 


요는, 범죄자들이 '기억을 못한다'고 하는 말들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거였는데, 이 형사분이 실례로 최근 검거한 한 좀도둑을 예로 들었다. 용의자가 검거되어 사건을 들이밀면 '기억나지 않는다', '모르겠다'라고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과거에 한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거된 좀도둑을 앞세워 절도 신고가 들어온 집을 중심으로 동네를 돌며 사건 여부를 확인하는데, 이 분께서 그러더라는 것이다. "저기도 내가 했어요. 가스관이 이러저러하게 생긴 게,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나는 지금 하는 일을 10년 째 하고 있고, 이 전에는 영 다른 일을 또 3년 정도 했었다. 그 전에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제외해도 정직원이 되어 사회생활한 지 13년 차에 접어들면서 이제 직장과 직업이라는, 내 인생의 아주 커다랗고 부담스러운 이 과제에 깊은 회의를 느끼던 참이다. 


좋아하는 일, 하고싶은 업무를 찾아 많은 시간과 인내력을 들인 만큼 내 일은 소중했지만, 역시 이것도 10년은커녕 3년을 넘기면서부터는 재미보단 의무감에, 창의력보단 타성으로 하게 됐다. 수 많은 상황과 약간씩 달라지는 업무에 맞딱뜨릴 때마다 하고 싶은 일은 조금 더 재밌게, 하기 실은 울며 겨자먹기로 미루고 미루다 마감 직전에 대충 해치우고 말면서 10년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 '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타성에 의해 이 사회와 국가, 세상이 돌아가는 장면도 목격했다. 우리는 대부분 모두 어떤 '산업'에 종사하며 밥값을 버는데, 이 '산업'이라는 것이 극소수의 고용주와 극대다수의 고용인으로 이루어져 있고, 고용인은 시스템에 의해 기계처럼 움직여 업무를 소화하기 때문이다. 


한 5년 전 난생 처음 내 인생을 흔든 허리디스크를 해결하기 위해 찾고 찾아 어떤 병원에 갔을 때, 나는 어디에나 '산업'과 '시장'이 존재하고, 그 시장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었다. 


나에겐 일생일대 위기였던 이 통증이, 이 병원에서는 수 많은 환자들의 증상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접수부터 검사, 진료, 입원, 시술, 퇴원 등 일련의 과정을 그들의 '업무'에 의해  처리받았다. 나는 아파 죽겠는 그 상황이, 이들에게는 기계적이고 감정 없이 처리하는 업무였고, 그 업무와 시스템에 의해 물 흐르듯 (조금의 망설임이나 착오, 갈등할 틈 없이) 과정을 밟아 내 통증이 차차 나아져 갔다. 내 개인적인 통증은 이 사회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겪었고 겪고 있는 통증이기에 여기에 거대 자본이 투입돼 이미 큰 시장이 형성돼있었고, 나는 이들의 시장과 전혀 무관하게 살아오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비극으로 인해 이 세계에 발을 들여 '치료'를 받았다. 신기하고도 어리벙벙한 기분이었다. 


나의 고통과 상관없이 의사와 간호사, 원무과 직원들에게 나는 아주 많은 소비자 중 한 명이었다. 이들에게 나를 대할 때 감정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업무를 볼 때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할 게 자명하다. 이따금 내가 상대방에게 하는 '속상하셨겠어요', '얼마나 놀라셨을까', '괜찮으세요?' 라는 말들도 그 업무의 일부분이지 않았을까.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말 조차 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래서 5년 전 디스크 통증을 계기로 새삼스러웠던 '직업'이라는 개념이, 집털이범의 아무렇지 않은 말 한마디에 다시 한번 새삼스러운 경악을 주었다. 이들에게 집털이는 업무다. 누군가에겐 집털이범이 직업이다. 누구나에게 그렇듯, 직업은 자주 지겨워지고 업무는 기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때가 점점 많아진다. 집털이범에게는 길을 가다 만나는 모든 집들이 '업무의 대상'이고, 그 중 좋은 업무 대상을 만나면 직업적 보람이나 성취감을 느끼며 일할 지 모른다. 범죄라는 건,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동기에 의해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 '악의'를 가지고 거창하게 이뤄지는 것이라는 내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런 범죄도 많을 거다.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경악할 만한 사건들, 추리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강력 범죄들. 그러나 다양한 범죄자 중 경범이든 중범이든 직업적으로, 습관적으로 범죄를 지속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고, 이들에게 범죄는 습관이자 일상이다.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모든 현관문을 버릇처럼 열어보고, 그 중 운 좋게 잠겨있지 않은 문이 나오면 쓰윽 들어가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을 해하고 나오는 거다. 지나가다 선호하는 구조의 도시가스관이 있으면 때를 봐서 얼른 관을 타고 올라가 남의 집에 침입하는 거다. 


우리가 생각하는 직업이 그렇듯, 이들의 '범죄 업무'도 하면 할 수록 스킬이 늘고 능숙해질 것이다. 선호하는 유형, 억지로 하는 유형으로 취향도 생기고 나중에는 이 분야, 이 방식의 작업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전문가가 되어갈 것이다. 토막살인이나 연쇄살인 같은 경악할 만한 강력 범죄는,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우주에서 지구를 침범한 외계인이 저질렀다 할 수 없다. 이건 우리 곁에서 서서히 자란 선인장과 같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성장하고 발전하는 지 모르고 지나치다 문득 자라나 비로소 눈에 띄게 커져있고 마침내 꽃을 피우는 선인장 말이다. 모든 위대한 일이 반복작업에서 탄생했듯, 모든 위험하고 엽기적인 사건도 반복작업에 의해 탄생한다. 우리가 한달에 한번이라도 물을 주는 선인장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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