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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Oct 27. 2023

너는, 뭘 바라고선 애를 키우니.

지루하지만 견뎌야하는 직장인의, 딱. 저 표정. 저거.

지난주에 고등학교 동창애들을 만났다. 다들 애 키우는 입장이라, 자주 만나긴 힘들지만 그나마 애 키우는 입장이 되어서야 십몇년 만에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다들 연락이 소원하거나 거의 끊기다시피 하다가, 결혼해서 애 낳고 키우다보니 어린이집 보낸 시간, 애들 학교 보내놓은 시간엔 얼추 시간이 맞아 정말 오랜만에 모여 아침맥주를 한 게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학교에 등원시키고 바로 A의 집에 모이면 10시반이 되었다. 그럼 얼른 맥주와 떡볶이, 과자와 샐러드같은 걸 펼쳐놓고 마시기 시작했다. 아침 10시반에 맥주캔을 따며 "야, 시간없어. 빨리 술부터 마셔"라며 맥주거품에 입술을 대는 내 고등동창을 보며 새삼 우리가 진짜 아줌마가 됐구나 하며 깔깔 웃기도 했었다. 그날 얼마나 재미지던지, 단톡방도 만들고 거기에 이런 저런 사는 얘기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위로도 해주고 조언도 해주다 내가 취업하며 모닝맥주는 요원해지고, 나머지 한명이 내년 복직을 앞두고 이제 다신 못볼 지 모른다는 협박에 가까운 제안을 하면서 간신히 저녁약속이 성사됐다. 퇴근 후 헐레벌떡 달려온 두 명과, 경기도에서 빨간 지하철을 타고 온 복직을 앞 둔 한 명이 저녁시간에 만난 건 기적같은 일이었다.


학창시절엔 참 잘 맞았던 친구들이지만, 이제는 사는 여건이 다르고 각자 애를 키우다 보니 입장 차이도 날 수 밖에. 세 명밖에 안 됐지만 뭐 하나 얘기가 나오면 세 가지 다른 의견이 나왔다. 가장 괴로운 건 배우자 악담이었다. 셋 중 자기얘기하길 가장 좋아하는 A는 숨쉬듯이 남편 욕을 해댔다. 단톡방에 하도 안 좋은 얘기를 늘어놓아, 한번은 내가 '나 이 방 나가면 안 될까. 남의 남편 때문에 내 정신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서' 라고 경고를 한 뒤에야 잠잠해진 터였다. 단톡방은 잠잠했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나니 남편 험담이 또 이어졌다. 두 아이가 이제 여섯 살, 네 살인데 자기는 졸혼이 인생 목표라며 한 달 전, 일주일 전, 사흘 전, 이틀 전, 하루 전 있었던 남편과의 에피소드를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다른 한 명과 나는 그닥 말이 많은 스타일이 아닌지라 떠들어대는 대로 들어줄 수 밖에. 그래. 이것도 친구 역할이지...하며 참고 넘기던 나는 기어코 목소리를 높일 수 밖에 없었다.


"뭐? 그 사람은 뭐, 애가 낳아달라고 해서 낳아줬대? 무슨 그런 말을 해?"


내 화가 폭발한 건 친구의 남편이 아니라 직장 동료 이야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말하길 좋아하는 친구는 이전부터 육아의 고단함과 자신의 독립성이 사라지는 걸 한찬하던 참이었다. 그래, 부모 지원으로 하고싶은 거 거의 다 하며 살아왔으니, 아이 둘 키우며 일까지 하기 힘들만도 하지. 라며 이해하려 노력했는데, 이 부분에서는 나도 참을 수 없었다.


"회사 매니저가 그러는거야. 자기는 애를 키우고 나서 세 가지 경우 아니면 실패한 거 같이 느낄 것 같대. 애가 스카이 중 하나를 가거나, 예체능에 소질이 특출나서 미리 진로를 그 쪽으로 잡거나, 그도저도 아니면 '엄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할 정도의 착한 아이로 크거나."


난 이 부분에서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걸 느꼈다. 오랜만에 마신 맥주 탓도 있겠다. 나는 기어코 공감한다는 취지로 그 매니저라는 사람의 말을 옮긴 친구에게 날을 세웠다. 그러는 그 사람은, 너는 부모님한테 그런 자식이었냐고. 아이를 내가 좋아서 낳았지 애가 낳아달라고 사정을 했냐고. 내가 낳았으니 아이가 잘 크도록 노력할 뿐이고 그걸로 끝이지, 애 키우는 게 무슨 투자냐고. 애 키우는 데 실패가 어딨고 성공이 어딨냐며 말이다.


생각을 좀 더 하고 말을 뱉었으면 좀 더 조리있게 반박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감정이 없어 목소리부터 높였다. 자기들은 그럼, 그 세가지 경우에 들어 부모님께 '성공한 자식'이 되어 다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나. 그것도 저것도 다 떠나. 대체 그런 소리를 할 만큼 자기만의 삶이 중요하고, 애 키우는 걸 무슨 특권이며 희생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애를 왜 낳았나.


친구가 평소에도 '내가 너무 많은 걸 희생하고 있다', '남편X은 쥐뿔도 안 한다', '아이로 인해 내 인생이 너무 달라졌다', '희생한다'고 자주 말 하는 게 거슬리던 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심기를 건든 건, 육아를 투자라고 생각해 '본전'을 찾으려는 그 태도에서 우리 엄마를 봤기 때문이었다. 착한 딸이어야 했고, 상장을 가져왔을 때에만 웃으며 칭찬을 해줬던 엄마였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자식이 아니란 식으로 나를 대했지. 지금도, 어디 하나 번듯하게 자랑할 만한 직장을 다니지 못한다 해서 '실망스럽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엄마가 바로 저런 태도로 나와 우리 형제들을 키웠구나 싶어 순간 분노가 일었던 듯 하다.


높아진 내 목소리에 두 친구는 반박을 하면서도 '얘 취했네'라며 상황을 얼버무렸다. '근데 애가 나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면 나도 화가 날 수밖에 없어', '너는 아직 애가 어려서 그래. 니가 아직 애가 나한테 대드는 걸 못 겪어봐서 그래'라며 육아경력자로서의 권위로 내 말을 반박했다. 화가 날 수도 있지, 그럼. 당연히 화가 나지. 그런데 아이와의 그런 작은 감정싸움, 지엽적인 문제로 '육아를 후회한다'는 명제를 끌어올 수 있는 건가.


나는 더 언쟁하지 못하고 눈물이 나 목이 멨다. 울음만 나오지 않았으면, 내 어린 시절과 엄마가 투영되지 않았으면 더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했을텐데. 그렇게 슬그머니 대화는 다른 화제로 옮아갔다. 회사 얘기, 요즘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얘기,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요즘 학교에서 어떤 일까지 있었는지... 뭐 그런, 그렇고 그런 얘기들 말이다.


밤이 늦어 집으로 돌아오며 보니 아이가 나를 기다리다 잠들었다는 남편 문자가 와있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아이와 남편 둘 다에게. 그리고 나는 또 다짐했다. 시간과 돈이 아까운 걸 보니, 난 아직 저녁에 우리 식구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나 왁자지껄 맥주나 마실 때가 아닌가보다. 나 혼자 고고하게 아이를 사랑하는 척하며 화내지 않아도 되는. 저녁에는 그저 우리집에서 저녁밥이나 차려야겠구나.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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