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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Nov 01. 2023

인쇄업, 종이 간행물은 이대로 쇄락할까.

...사진은 인쇄소 아닌, 중부시장 먹자골목

내가 다니는 회사 주소지는 서울시 중구다. 충무로와 동대문운동장, 장충동들 사이 골목에 있다. 오래된 동네라 제멋대로 얽힌 골목이 인상적이다. 오래된 골목에 더 오래된 집들과 작달막한 건물들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회사를 오가며 골목을 일일이 찾아보는 맛이 있다. 골목마다 크고 작은 인쇄소, 포장지 업소가 빼곡하다. 충무로 인쇄소골목에서 연장된 업소들이 이곳까지 밀고들어온 흔적인데, 이제 충무로의 인쇄골목이 쇄잔했음에도 아직 이 골목의 업소들은 매일 기계를 돌리고 있다. 지게차가 열심히 골목을 오가며 인쇄물을 나르고, 업소 사장님들이 골목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어제는 한 시민단체 행사에 초대받아 퇴근 후 부랴부랴 지하철을 타고 오랜만에 서울 서부지역까지 갔다. 해가 진 후, 그것도 집에서 이렇게 멀리까지 나와보는 게 몇년 만인가. 매일 퇴근하고 집에 서둘러 가 밥하기에 바빴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 졸업 후 백수 시절 떠돌던 서울 서부에 이제는 발길 끊은 지 십수년 만에 다시 찾으니 반가웠다. 행사에는 고맙게도 상을 주겠다고 초대됐다. 그야말로, 별 거 한 게 없음에도 '재능기부'란 이름으로 내가 그린 그림을 월간지에 실어준 단체가 이번에는 10년 꼬박 그림을 보내준 나에게 감사패를 주겠다고 불렀다. 이것 참... 감사하면서도 받아도 되는 상인지 뭔지 망설이는 사이 상패가 제작되고 초대장이 날아왔다. 이젠 불참하는 게 오히려 누가 될 것 같아 부득이 저녁시간을 뺐다. 남편은 자기 혼자 아이에게 밥을 해먹이고 목욕을 시켜줄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 해주었다. 미안함과 불편함에, 몇 년 만의 서울 서부 나들이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행사장에 도착해 서둘러 요기를 하고, 높으신 분들의 인삿말과 축사를 들고 짤짤짤 열심히 박수를 쳤다. 박수라도 쳐야 내가 상을 받는 데 대한 고마움이 상쇄될 것 같았다.


박수치는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내 이름이 나왔다. 행사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제깍제깍 대기한다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10년 간 내가 그린 그림을 묶은 영상을 소개한다는 사회자 말에 내 심장이 쿵덕쿵덕 뛰기 시작했다. 너무 창피해 얼굴을 가리고 내가 그린 그림과 거기에 달린 글들을 보니,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옛날로 흘러간 생각들이다. 와... 그래도 저 땐 저런 생각도 했구나. 새삼스러울 새 없이 영상이 끝나고 불이 켜지며 무대로 나갈 차례가 됐다.

상패와 꽃다발을 받자 소감을 말해달란다.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예상하면서도 인사말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나는 마이크를 거쳐 들리는 나의 잠긴 목소리가 민망해 주눅이 들었다.


그간 원고 청탁을 하고 원고를 받아다 편집에 마감을 도맡은 활동가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나자, 생각난 건 우리 회사 앞 인쇄소 사장님들, 인쇄물을 제본하고 포장하는 아줌마들, 지게차로 간행물 더미를 나르고 근로자들이었다.



"많은 매체들이 종이 간행물을 포기하고 인터넷 매체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간행물 만드는 데 종사해봐서 그 비용과 수고로움이 얼마나 큰지 압니다. 지금 이 단체도, 모르긴 몰라도 종이값, 잉크값, 인건비, 우편비까지 달달이 내는 간행물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않아 온라인 전환을 고민하시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간행물을 만들고 독자들에게 비용을 들여 발송하고 있는 건 그만큼 독자와 이 사회를 위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은 독자가 찾아 들어가야 하는 매체지만, 간행물은 우리들에게 찾아오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찾아오기 위해 애쓰는 이 단체에게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물론, 어제 현장에선 이렇게 멋들어지게 말하지 못하고 어버버했지만 전하고 싶었던 뜻은 이랬다. 나 역시 회사에서 하루에도 몇 건에서 많게는 수십건까지 들어오는 신문에 잡지를 받아 포장을 뜯고 한번 열어보지도 않고 재활용품 속에 넣어버린다. 하지만 그 간행물이 나에게 도착할 때까지, 글을 쓴 사람부터 편집을 한 사람, 광고를 넣기 위해 애쓴 사람, 인쇄한 사람과 접어서 포장한 사람, 배송한 사람까지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음을 안다. 그래서 폐기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든다. 종이 간행물은 자원 절약과 비용 절감, 시대의 흐름에 맞춰 없어져야 하는 걸까. 종이신문을 만들며 월급을 받았고, 지금은 인터넷 매체인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면서도 종이 잡지를 들춰보는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책은 다 사서 소장하면서 잡지와 신문을 돈내고 산 지 오래된 나. 나는 보지 않으면서 또 그 간행물이 다 없어지면, 저 골목에서 일하는 저 분들은 무슨 일을 하셔야 할까. 내 마음 속에서 '종이 간행물'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오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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