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을 때 쓰겠다, 앞으로는.
화가 나서 점심은 혼자 떡볶이를 먹었다. 매웠다
옛날에 열심히 쓰던 블로그는 어떤 미친놈 때문에 계정 째 삭제해 단 하나의 글도 남아있지 않다. 열심히 하던 싸이월드가 문을 닫네 어쩌네 하는 소식에 공포에 질려 급히 십몇년 만에 들어가 다이어리를 열었다. 짧막한 글들이 수없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느꼈다. 아... 나는 정말 기억력이 나쁜 사람이구나.
십몇년 전 나는 내 기억력이 수십년 이후에도 지속될 줄 알았나보다. 구체적인 사건은 명시하지 않고, 고유명사도 없이 대상은 '그 사람', '그것'으로 대체해 그저 짧막한 감정, 감상에 그친 글이 많았다. 아마도 만에 하나 다이어리가 유출돼 내가 누굴 좋아했고 누구와 '썸'(그 땐 이런 말도 없었지만)을 탔는지, 타인이 알아채는 게 두려워서였을 거다. 그리고 특정 인물(특히 남자)과의 사건을 미주알고주알 쓰는 자체가 겸연쩍고 그런 감정을 세세히 적기 싫어 그랬을 거다. 여튼 나는 십수년 만에 열어본 나의 일기를, 내가 쓴 게 분명함에도 당최 해독할 수 없었다.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홍대입구에 갔다. 이제는 아이를 안고 아줌마가 되어서야 다시 찾았지만, 그곳은 내 20대와 30대의 거의 모든 추억이 만들어진 곳이다. 추억이 구체화될 상점이나 술집, 음식점은 죄다 없어지고 거리 자체는 낯설어졌다. 그럼에도 골목의 모양과 갈림길에 서있는 가로수, 비탈길의 뉘앙스는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그런 것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 20년 전에 거기에서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누구를 기다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그 누구를 기다리며 느꼈던 기분. '그리운' 감정이 되살아났다. 애뜻하고 간질간질, 기분좋은 긴장감을 가지고 서있던 그날의 기분이 냄새처럼 피어올랐다. 신기하기도 하지. 그땐 10년, 20년, 50년이 지나도 절대 잊지 못할 만큼 절절하고 절실했는데.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의 뇌는 객관적인 데이터는 모조리 삭제한 후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님은 그랬다. 어릴적 가족과의 추억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가 그 어릴적 사건을 기억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때 느꼈던 감정이 남기 때문이라고. 네살 때 엄마아빠와 강릉 바다에 놀러간 걸 기억하는 아이는 없지만, 네 살 강릉 바다에서 엄마아빠와 모래를 쌓고 파도를 발로 차며 느낀 즐거움, 따뜻한 소속감은 아이 무의식과 몸 속 어딘가에 각인돼 아이의 성격을 형성한다. 사건은 잊어도 감정은 남는다. 그걸 40살 넘은 지금 내가 비로소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기분이 좋을 때 글을 쓰려고 한다. 오늘처럼, 비록 내 생일이라는 좋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내 타박을 들어 가슴이 답답하고,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못했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고는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 건물 뒤 골목에서 혼자 꺼이꺼이 운 날은 긴 글을 쓰지 않으려 한다. 너무 화가 나고 도무지 왜 나한테 이 화살이 날아왔는지조차 납득하지 못함에도, 내가 아이를 맡기고 있고 신세지고 있으니 그저 '을'이나 '병', '정'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속이 까맣게 타는 듯 하루를 보낸 날은 기록을 남기지 않겠다.
감정이 남으니까. 이런 감정은 내 무의식에 남는 걸로 충분하다. 그걸 내 일기에까지 남겨 훗날 '아 이날 이렇게 거지같았지. 정말 죽을 만큼 화가나고 억울했고 원망스러웠지'라고 상기하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