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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Nov 03. 2023

몸에 좋은 걸 먹어야 기분도 좋아진다.

라면, 떡볶이, 빵 이런 거 말고...

떡볶이랑 맥주. 이게 얼마나 건강에 좋은데. '정신건강'에 ...


라는 호기를 부릴 수 있다면 당신은 젊은이다. 나도 그랬다. 불과 한 5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를 낳고 굶으며 무유수유까지 하고 나니 내 몸에 남은 게 없었다. 체중은 임신 전 평균 몸무게에서 10 kg가 줄어든 후 회복이 되지 않았고, 몸에 근육은커녕 꼭 있어야 할 힘줄까지 사라진 듯 하다. 무릎이 시리다는 게 뭔지. 흐린 날이 되면 온 몸을 밤새 몽둥이로 얻어맞았는지, 아침에 눈을 떴음에도 몸을 일으키지 못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나는. '저질체력'조차 갖지 못한, '체력마이너스'의 몸뚱아리가 되었다.


몸 건강만큼 중요한 게 정신건강이니까. "야, 이제 나이드니 몸이 예전같지 않아"라고 깔깔깔 웃으면서도 먹고싶은 거 다 먹고 되는 데까지 술을 마셨었다. 그나마 그렇게 웃으면 농담이라도 할 수 있었던 그 때는 체력이 준수했던 걸까. 이젠 저런 말조차 함부로 내뱉지 못한다. 말이 씨가 될까봐. 갑자기 내일 아침 몸 한군데가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파올까봐.


무섭다는 건 내가 오래살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나와 직접적인 공포가 아니라, 이 몸으로 우리 애를 어떻게 키우지-하는 간접적인 공포다. 그렇다. 아이가 이제 유치원도 가고 초등학교도 가고, 중학교 고등학교 거쳐 대학을 가고 직장다니다 결혼하는 것도 봐야하는데. 이제 36개월밖에 안된 아이를 벌써 이렇게 노쇄해버린 몸으로 키우고 있자니 조바심이 난다. "정 기자, 그래서 애 아빠들이 요즘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꼴등 안 하려고 헬스 다니는거야."라고 조언하던 ㅇㅇㅇ사장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남녀평등의 시대. 먼 훗날 아이 초등학교 운동회 날 애 아빠가 근무를 못 뺄 수도 있고, 사건땜에 중간에 불려갈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애를 업고 달리는 건 내가 해야하는데, 나 지금부터라도 헬스 다녀야 하나. 아니, 헬스는 둘째 치고, 내가 운동은커녕 밥 한끼라도 온전히 챙겨먹을 시간이 되나. 걱정에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제의 여파로 아침부터 몸도 정신도 정상이 아니다. 머리는 어제의 기억을 일을 잊지 못했는지, 새벽 잠에서 깨자마자 또 나를 붙들고는 종일 놔주지 않는다. 날은 또 왜 이리 꾸물한거니. 꾸물꾸물. 비가 올듯 말듯 잔뜩 흐린 하늘에 내 몸도 컨디션도 바닥이다. 점심시간이 되어 사무실을 나서며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 라면을 먹을까 하다 발길을 포케집으로 돌렸다. 안돼, 이럴수록 몸에 좋은 거 먹어야 해. 몸에 좋은 거.


언제부턴가 전문가들이 장건강을 강조하는가 싶더니, 뇌의 상당부분이 장 건강과 연관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왔다. 장내 미생물 상황에 따라 인간이 우울하기도, 행복하기도, 뇌 기능이 활성화되기도 한다고. 좋은 걸 먹고 좋은 균을 활성화시켜야 지금 내 맘도, 몸도 좋아지겠지. 속는 셈 치고 포케집에 들어가 새우와 구운마늘이 든 포케를 싸들고 공원에 가서 앉았다. 아무도 없는 벤치에 앉아 핸드폰으로 음악을 크게 틀고 먹기 시작했다. 오리엔탈 드레싱이 잘 어울리는 양상추와 보리밥, 견과류, 방울토마토, 옥수수, 강낭콩, 새우살과 마늘을 우적우적 씹었다. 내 입 안에 씹는 소리가 내 귀를 울리니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냉큼 먹고 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어느새 1시가 되었다.


신기한 건 오후가 되자 서서히, 조금씩,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 기분이 나아졌다는 거다. 몸도 조금은 가뿐해졌다. 정말, 내 뱃속 위장과 대장 소장에서 좋은 미생물들이 신이 난걸까. 그냥 기분 탓인가. 전문가들은 이걸 '플라시보'라고 하던데. 싱싱한 야채와 견과류, 기름지지 않은 단백질이 주는 플라시보를 앞으로도 자주자주 애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건강을 핑계로 몸에 덜 좋은 걸 먹어치우던 그런 버릇을, 이젠 진짜 건강에 좋은 걸로 바꿀 나이가 됐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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