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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Nov 10. 2023

나의 '관계'가 달라졌다. 아주 많이.

이제 너희도 실내로 들어가야할 때가 된 것 같아.... 늠 추워 ㅠㅜ

한 때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모두 인터넷 '카페'에 모여앉아 할 얘기 안 할 얘기까지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다음에는 블로그였다. 나도 블로그를 열심히 하다 스토커에게 해킹당해 실컷 농락당한 이후 블로그를 계정 째 파기했다. 1000개 넘는 내 글과 사진, 그림이 몽조리 날아갔으나 당시엔 방도가 없었다. 지긋지긋한 스토커 새끼를 경찰에서도 어쩌지 못하던 10년 전이니, 요즘처럼 법이라도 있었으면 모를까. 나는 스토커라는 빈대 잡으려고 내 초가삼간에 블로그까지 홀라당 태워먹었다.


그리고 나는 블로그와 카페- 이런 온라인 매체에서 급격히 멀어졌다. 불특정 다수가 나의 글과그림, 사진을 본다는 건 설레고 자신감 생기는 일에서 무서운 일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그 일이 생기기 전 그보다는 작은, 그러나 위험한 사건들이 있었다. 잘 떠오르지 않아 찾아보니 '하인리히법칙'이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출처: 나무위키) 대학 4학년 때, 내 글을 보고 나와 만나고 싶다는 쪽지가 왔다. 인사동 어느 카페에서 저녁에 만나자 했다. 나는 '나의 독자'라는 사람을 만나러 겁도 없이 거기엘 나갔고, 어떤 중년의 아저씨를 만났다.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데, 일반적이진 않았다. 별 큰일 없이 헤어졌는데, 그날부터 문자가 왔다. 내용이 점점 이상해졌고 나는 번호를 차단했다. 무서워서 스팸문자함을 열어보지 못했다. 나중에 나중에, 일년 쯤 지나서 스팸문자함을 열어보니, 문자가 몇십 통이 와있었다. 내용은 점점점 난폭해져 마지막엔 쌍욕이 가득했다. 내가 너무 겁이 없었다...큰일 날 뻔 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튼 나는 스토커를 다행히 물리(쳤다 믿고 이날까지 살고 있다)치고, 후에 일 때문에 네이버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아이디와 비번 관리와 보안에 만전을 기했다. 그리고 블로그 따위는 하지 않았다. 카페에 남겼던 글도 모조리 삭제했다. 인터넷 상에 남은 나의 흔적을 지울 수 있을만큼 지웠다. 그리고 일만 했다. 내 글을 인터넷에 올리지 않고 메모장에 적어 컴퓨터 드라이브에만 저장해두었다. 혹은 손글씨로 공책에 썼다. 자판을 두드릴 때와 펜으로 쓸 때 내 문체가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글은 서랍과 책장 어디쯤 쌓여 자주 볼 수 없었다. 노트북을 몇 번 바꾸며, 드라이브에 있던 메모장 파일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공책 몇 권은 은연 중 폐품과 함께 버려지기도 했을 거다. 언제부턴가 나는 일기도, 내 글도 쓰지 않았다. 기록하지 않는 삶도 살 만 했다. 그만큼 바빠지기도 했으니까.


그러다 어제 무심코 네이버 계정을 보니, 그래도 필요에 의해 이웃이 맺어진 블로거, 카페들이 있었다. 하나하나 보다보니 예전의 내가 보였다. 관심사 위주로 가입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맥주, 와인, 북클럽, 여행....보면서 하나하나 이웃 취소를 눌렀다. 이젠 더이상 흥미가 느껴지지 않아 볼 계획이 없는 글들이었다. 지우다 보니 하나를 남기고 모조리 정리됐다. 그 하나는 캐나다 관광청 블로그로, 대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보내줬던 캐나다 밴쿠버가 얼마나 좋았는지, 그 블로그는 차마 이웃삭제를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많이 달라졌다. 이젠 여행이고 맥주고 책이고 뭐고. 재미가 없다. 이걸 내가 왜 그리 열심히 봤었나 싶기까지 하다. 지금은 애를 키우니 시간이 없어서 그런걸까? 의구심도 들지만, 애를 키우다가 시간이 생긴다 해도 이런 블로그를 다시 찾아볼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내가 변한 거다.


블로그 뿐인가. 어릴때부터 친했던 친구도 나는 이제 더는 못 참겠다며 연락을 끊었다. 지난 달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은, 내가 변한 건지 걔가 변한 건지 아니면 둘 다 변한 건지 대화를 도저히 못참아주겠어서 다신 만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이제 나에게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나 내가 맞춰줄 것들이 아니다. 오로지 나 자신. 스스로와 내 가족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지향하고 싶은 것들이다.


그리고 하나 남은 블로그 이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남아있는 내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된다. 일로써 만났지만 지금까지 개인적인 안부를 교환하고 있는 김 과장님, 정 팀장님. 연락 끊겼다 싶다가도 내 생일이면 어김없이 케익쿠폰을 보내오는 홍 대표님. 아이 낳았다고 기쁜 소식을 보내온 ㅇㅇ씨.

서로 바쁘지만 또 이따금 건강과 당도높은 디저트를 서로 챙기는 ㅇㅇ이, ㅇㅇ이, ㅇㅇ이.


그럼에도 옆에 남은 내 사람들을 정말, 목숨처럼 아끼는 건 포기하지 말아야지. 어으 오늘따라 날이 찹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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