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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Dec 04. 2023

입시철, 문화예술학과 진학? "도망가, 마지막 기회야"

어그로 참 싫어하는데, 문화예술 관련 과로 진학하려는 수험생, 혹은 그 학부모가 한 명이라도 더 이 글을 보길 원하는 마음에 어그로를 끌었다. 결론은 이거 하나다. "웬만한 각오, 마음이 아니라면 다시한번 생각하세요. 미술, 음악, 영화, 연극 관련 과요."


아는 분 아이가 이번에 수능을 치고 어느 과에 진학할지 고심하며 나에게 물었다. "ㅇㅇ씨, 혹시 ㅁㅁ대 영화과 관련해서 아는 분 있어요? 영화 뮤지컬 공연 좋아하는 아이라, 어설픈 일반대 보내느니 여기 보내서 좋아하는 거라도 하면서 살면 어떨까 해서요."


난 연극영화를 좋아하지만 그쪽 바닥에 얼쩡거리다 떠난지 20년이 다될 정도의 옛날사람이 된 데다 전공도 미술이라 뭐라 답을 하기 꺼려졌다. 대학 진학, 직업 선택 시기의 누군가에게 내 한마디가 그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자신이 없었다. 대신 만난 지 오래된, 그러나 한 번 만나자고 서로가 벼르고 있는, 만나면 늘 기분좋게 헤어지는 드라마작가를 알고 있어 그분께 여쭤보마 했다. 대학 전공이 영화연극이고, 무수한 직장과 사회경험을 거쳐 결국 드라마 판으로 돌아와 최근 새 작품 집필을 마치고 쉬고 계신 터라 시기도 좋았다. 작가님께 연락해 만날 약속을 잡았다.


내 결혼식 이후 처음 만나는 과장님-내가 결혼 전 한창 기자로 취재다닐 때 출입처 회사 홍보일을 하던 분과 인연을 맺은 터라 서로가 아직도 기자님, 과장님이라 부른다. 이제 더 이상 기자도, 과장도 아닌데 말이다-과는 과장님의 집필 감옥 '출소' 기념으로 손두부집에서 만났다. 주문을 하고 몇 년치의 근황토크를 신속하게 끝내고 자리를 옮겼다. 카페에 앉아 요즘 영화 드라마 시장에 대해 물었다. 결론은? 암담했다. 현재 시장은 바닥이었다. 이 시장 제일 큰 손인 CJ가 한 해 제작하던 영화드라마가 40편이었는데, 내년에는 5편만 기획하고 있을 정도란다. 현재는 그렇다 치고, 미래는? 역시 가까운 시일 안에 밝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분야에 종사하려는 지원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 시장에서 원하는 인력의 조건, 지금 현장에서 일하는 인력은 대체로 어떤 과정을 거쳐온 사람들인지를 물었다. 과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서 일하며 기술을 배우거나, 글을 써서 감독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비추."


들으면서 아. 영화판도 드라마판도 똑같구나, 미술판이랑 말이다. 미대를 나와 그림 그리는 작가 외에 다른 일을 하기위해 내가 10년 넘게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떠올랐다. 그리고 내 열정이나 집념, 실력과는 상관 없이 전공 만으로 얼마나 많은 낙인이 언론방송사 면접관들에 의해 면접도 보기 전에 찍혀있었는지. 나보다 못해 보이는 지원자들이 선배 교수 인맥으로 얼마나 쉽게 내 직장보다 좋은 매체에 취직하는 지를 봤었다.


다른 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문화예술 관련 과 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편견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사회성 없고, 성실하지 않으며, 성격이 괴팍하고, 제 멋대로일 가능성이 큰 인력이다. 게다가 여자 문화예술과 전공 지원자는 남자 인터뷰어에게 '잘 꼬시면 어렵지 않게 넘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헛된 망상까지 심어준다. 그런 편견들-과 감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그저 일방적으로 당하며-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해왔다. 편견 없는 오너, 면접관을 만나기 쉽지 않았다.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상사들은 'ㅇㅇ씨는 참 미대 출신 안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거, 다시보니 내가 창의성이 없다는 말이었나?!) 회화과 전공이 주홍글씨처럼, 나에게는 그저 감추고 싶지만 평생을 쫓아다니는 꼬리표였다.


물론 작업을 계속 하거나, 아이들 미술을 가르치기엔 더없이 좋은 자격조건이지만. 그게 다였다. 이 전공의 확장성은 없다시피했다. 돈을 들여 디자인 대학원을 가지 않는 한, 그럴듯한 회사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지금, 열아홉, 스물의 나이에 인생의 상당부분이 결정되고 가능성이 좁아진다면 그처럼 좌절감 드는 일이 있을까. 사회에 나와 회사에 취직하고 돈을 버는 나에게, '출소'라는 말은 오히려 내가 쓰고 싶었다.


어쩌다 '우리 딸이 미대를 가고싶어하는데, 조언 좀 해주세요'하는 취재원을 만나면 내가 반복해온 말이었다. "그림을 계속 그려 작가가 될 거면 미대 가야죠. 그런데 그저 그림이 좋은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미대갈 거면 보내지 마세요. 가난해도 좋고, 하류의 인생을 살아도 기꺼이 좋을 정도로 그림이 좋고 그 삶을 감당할 수 있겠다 하면 보내세요, 미대." 대부분 이 정도 얘기하면 알아듣고 뜻을 접었다. 부모 입장에서 '굶고 살지도 모른다' '인생 골로 간다' '바닥의 인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아이에게 그 길을 허락할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우리 부모님도 같은 이유로 내 결정을 결사반대했지만, 나는 내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 대가로 지금까지와 같은 인생을 살았다. 그저 '내 고집대로 했다'는 자부심이 남은 게 자산이라면 자산이다.


문화예술 분야는 사람들에게 장밋빛으로 보인다. 매일 좋은 걸 보고 고급스러운 작품을 가까이 하며 유유자적, 돈은 좀 없어도 즐겁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인생을 살 거라는 착각을 준다. 하지만 그 바닥 안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겐 일반인들의 그 시선이 다인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어'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틴다. 그게 잘 되면 다행이지만, 잘 되지 않으면? 그 가족들이 고생한다. 사실 대부분은 그만큼 버티지도 못하고 중간에 이탈해 다른 길을 알아본다. 하지만 문화예술인에 대한 편견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상처입는다. 그러면서 생활과 타협한다.

결정적으로, 진짜 창작자로 남는 능력자들의 면모를 보아도 연극영화 전공자는 극소수다. 오히려 다른 학문을 깊이있게 공부한 후 영화 시나리오를 쓴 사람들이 대다수다. 봉준호 감독의 전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되기 힘든 창작자는 아니어도 그 주변에서 관련 일을 하며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마음이어도 상처받는다. 처음으로 창작자를 맘먹고 이 바닥에 들어온 인력 중 상당수가 결국엔 밀리고 밀려 그 '관련 일'을 하는 생활인이 되니 말이다. 처음부터 주변인을 목표로 할 정도의 물렁한 의지라면,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럴거면 편견 없는 일반적인 전공을 거쳐 자기 밥벌이를 책임지며 취미로 연극영화를 즐기는 편이 낫다.


작가님의 말을 전하자, 아는 분은 '알게 돼 다행'이라며 지원 학과 후보군 중 영화학과를 삭제했다. 이렇게 또 한 명을 구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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