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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Jan 16. 2024

'엄마가 자기를 부르기만 기다리는 애들'

"엄마, 얘 눈좀 봐/왜? 눈이 왜?/ 얘 울 것 같애."

“귀갓길에 멈춰서 애들 노는 걸 본 적 있어요? 거리나 공터에서 놀다가 때가 되면 엄마가 집에 오라고 부르죠. 보통은 마지못해 가거나 가기 싫어서 반항을 해요. 애들은 그래야죠. 그렇지 않은 애들보다 훨씬 나아요. 다른 애들과 못 어울리고 구석에 홀로 앉아 있는, 딱히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은 애들 있잖아요. 엄마가 자기를 부르기만 기다리는 애들이요. 내가 그런 아이일까 봐 두려워요. 그렇게 살다가 끝나는 건 정말 싫거든요.”


아직 보지 못한, 보려고 맘 먹은. 실로 오랜만에 '이 영화 꼭 봐야겠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킨 글을 보았다. 오랫동안 신뢰해온 김세윤 평론가가 최근 시사인에 실은 글에서 이 영화를 추천했다. 짧은 글이었지만, 강렬했다. 아이가 자면 오늘은 이 영화를 봐야겠다 맘 먹었다.


아마도 영화에 나오는, 늙은 주인공의 대사인 듯 하다. 김세윤 작가는 짧은 글에서 저 인용만큼은 길게 썼다. 길게 쓸 만한 가치가 있었다. 저 글을 보면서, 점점 저 말썽이 많아지고, 반항을 하고, 자기 하고싶은 대로만 하려해서 나를 난처하게 하는 우리 아이가, 실로 '잘 크고 있구나' 안도했다.


놀이방에 가면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도 나가기 싫다고 끝까지 남아 느적느적 양말을 신는 아이. 어린이과학관 천체상영관에 들어가 불이 다 꺼져 무섭다며 엄마 손을 꼭 잡다가도, 코코몽 노래가 울려퍼지자 내 손을 뿌리치고 의자 옆 공간에 서서 퐁퐁퐁 뛰며 음악을 즐기는 아이. 어린이집 끝나고 이모와 외갓집에서 놀다, 퇴근한 엄마를 보고도 집에 가기 싫다며 할아버지 방에 숨는 아이. 언제나 '즐거운 시간'이 끝날 때마다 이 시간을 끝내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엄마아빠 애를 먹이지만. 그렇지. 이게 정상이구나-하고 화가 나려는 내 마음을 다독인다.


생각해보면 나는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쓴 적이 거의 없다. 고집이 없는 성격이 아닌데, 태어나 보니 예민하고 허약한 엄마, 불같은 성질의 아빠, 엄마를 마냥 힘들게 한 언니가 이미 있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성질을 죽이고, 주는 밥 잘 받아먹고 하지 말란 거 하지 않으며 하라는 것만 하며 자랐다. 나도 이런 내가 '순한 성질'이라고 착각할 정도였으니. 그러다 사춘기를 지나 진로를 결정할 때 결정적 한방의 고집으로 엄마아빠의 뜻을 거슬렀다. 지금 내 모습이, 내가 살아온 43년의 결과라는 걸 알기에 나는 내 선택과 고집에 후회가 없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나중에 힘든 순간이 생길지라도 '엄마가 나를 부르기만 긴다리는' 수동적인 사람은 되지 않길 바란다. 유난히 피곤한 화요일 저녁, 쌀 씻어 타이머를 맞춰 놓았으니 집에 가면 밥은 되어 있을 거고...어제 끓여둔 오징어뭇국에 김을 꺼내고 계란말이만 후딱 해서 저녁을 때워야겠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이 영화를 봐야지. 감독 올리버 허머너스, 출연 빌 나이, 에이미 루 우드, [리빙: 어떤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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