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

by 상현달

인생은 돌고 돈다고 한다. 네모난 인생도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고 세모난 인생도 돌다보면 그 자리로 돌아온다. 살다보면 겪게될 힘든 일, 슬픈 일, 비참한 일, 분노하는 일, 모두 시간이 지나면 평온한 원래대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어떤 인은 시간이 더 걸리고 또 어떤 일은 시간이 덜 걸릴 뿐이다.


토큰이 이런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면 돈이 많은 지폐와 지위가 높은 뱃지는 개똥 철학이라며 웃어 버린다. 너와 같이 돈도 없고 수준도 떨어지는 토큰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자체가 부끄럽다고 한다. 그래도 내가 지폐랑 뱃지보다 나은 것이 있다. 아무리 내가 무식하다느니 가진게 없다느니 해도 내게는 토큰과 뱃지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각이 없이 동그랗다는 것이다. 둘은 내 앞에서 나를 무시하고 깔아뭉개고 비웃지만 뒤돌아서면 나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내 앞에서 부러운 티 하나 내지 않고 그저 비웃을 뿐이다. 난 그들의 속마음을 알기에 둘의 이야기를 그냥 무시한다. 어차피 그들보다 내가 더 멋진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아줌마 역시 나를 예쁘고 귀하게 생각한다. 해가 뜨기도 전에 우리집 문을 열고 혹여 밤새 내가 아픈 곳은 없는지 살펴본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고 아픈 곳은 없는지 확인해주고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해 주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지폐보다 가치가 없고 뱃지보다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한 명이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고 따스한 커피 한 잔 사준 다면 바닥에 있던 내 가치는 하늘 위까지 올라가게 된다.


“오늘 하루도 손님들이 많이 올 수 있게 해주세요. 얘네들 팔아서 우리 아들 공부시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줌마는 매일 고요한 새벽에 나르 닦으며 이야기 하신다. 처음에는 이런 아줌마의 행동이 좀 이상해보였다.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소곤소곤 이야기 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까무라치게 놀라겠는가! 아줌마를 처음 만나고 내가 그랬다. 밖에는 아직 어둑어둑한데 갑자기 우리집에 불이 켜지고 이상한 주문같은 소리도 들려서 꿈을 꾸고 있는줄 알았다. 꿈 속에서 눈을 떴는데 내 앞에 아줌마의 얼굴이 딱 하니 보이는데 너무 놀라서 비명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아줌마! 간 떨어질 뻔 했잖아요! 저하테 왜 그러세요!”


그 전 아줌마는 한 번도 이런 미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내 존재를 별로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처럼 까무라칠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지나자 아줌마의 그런 행동과 말이 익숙해졌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고 익숙함에 적응한다고 하지 않던가! 매일 반복되는 아줌마의 행동과 말은 이제 내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잘 부탁한다는 아줌마의 말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오히려 아줌마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매일 하던 그 의식을 하지 않은 날은 뭔가 기분이 찜찜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나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거북하고 낯뜨겁고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아줌마는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처럼 우리 집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웃으면서 말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조용했던 아줌마가 있을 때와는 다르게 여행을 떠나는 빈도가 높아졌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먼저 밖에 나가고 싶어서 조용한 아줌마 앞에서 머리를 들이대며 나를 봐달라고 외쳤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네, 여기 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부드러운 손, 거칠거칠한 손, 빛나고 딱딱한 것이 내 몸을 감싸는 손 등 다양한 손이 나를 감싸 안는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여행이 시작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여행도 다녀본 사람이 또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들은 한 달 사이에 충분히 많은 바깥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어쩔 때는 이틀, 사흘이 걸리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한 달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사실 일주일 정도 여행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주머니, 가방, 버스, 집, 문방구, 학교 등 한 번도 보지 못한 곳에서 지낸다는 것은 가슴이 떨리는 일이다. 또 그곳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여행을 하고 오면 몸이 좀 피곤해진다. 편안한 내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더 많다. 늘어지게 잠도 자고 싶고 친구들과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고 먹지 못했던 집밥도 먹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줌마의 그 따뜻한 말과 시선을 느끼고 싶다.


이런 바람을 가지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금새 또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이럴 때 보면 조용했던 그 아줌마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여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아줌마의 지갑에 지폐가 늘어나는 것을 알고 있다.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하느라 몸은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줌마의 지갑이 볼록해지면 기분이 좋다.


아줌마가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항상 아줌마가 매일 밤마다 “이 돈으로 아들 먹을 .......”, “이 돈으로 아들 좋아하는....”. “이 돈으로 아들 사줄.....”이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대충 무엇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할 때 보면 아줌마는 항상 웃고 있었다. 아줌마의 웃는 얼굴을 보니 몸은 여행으로 지쳤지만 마음은 그 어떤 지폐와 뱃지보다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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