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수학여행 티켓은 선생님이 쏜다.
[티켓 투 더 문" 수준의 수학여행비]
그 해, 나는 수학여행 대신 아빠 영정 사진이 놓인 제삿상 앞에 앉아 있을 줄 알았다.
초등학교 6학년, 모두가 설레는 수학여행 시즌이었다. 친구들은 경주에 가서 불국사와 석굴암 구경을 하고 밤에는 날을 새며 놀거라며 신이 나 있었고, 담임 선생님도 연신 “추억은 남는 거야”라며 카메라 배터리를 걱정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책상에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 시절 내 가슴 속엔 '경주' 대신 '우리 집'이 있었다.
삼겹살 한 줄도 망설이던 우리 집
엄마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나와 형 둘을 혼자 키우느라 하루 종일 발에 땀이 나도록 일했다.
삼겹살 한 줄 사는 것도 망설이던 우리 집 사정에, 수학여행비 7만 원은 거의 '티켓 투 더 문' 수준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수학여행은 그냥 다음에 가면 되지’라며 괜한 말을 스스로 되뇌었다.
물론 초등학교 6학년에게 ‘내년’은 없다.
“넌 꼭 가야 해”
수학여행 전날, 선생님이 내게 조용히 봉투 하나를 건넸다.
“이건... 그냥, 선생님이 주는거야. 아무 말 하지 말고 가서 재미있게 놀다 오자.”
그 봉투 안엔 여행비와 간식비, 그리고 작은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넌 꼭 가야 해. 네가 빠지면 반 사진이 완성되지 않아.”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밥]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봉투를 보여드렸다.
엄마는 선생님이 건네준 봉투를 조심스럽게 열어서 손편지를 천천히 읽으셨다. 글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정성스럽게 읽으셨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봉투를 바라보셨다.
나는 엄마의 어깨가 살짝 떨리는 걸 보았다. 눈물을 참으려고 애쓰시는 모습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평소보다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려주셨다.
찬은 별로 없었지만, 밥만큼은 따끈따끈하게 지어주셨다. 그리고 김치찌개에 햄도 조금 넣어주셨다.
“동철아, 많이 먹어.”
엄마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부드러웠다. 손편지를 읽고 난 후의 엄마는 뭔가 달라 보였다.
“고마운 분이구나”
밥을 다 먹고 나서, 엄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참 고마운 분이시구나. 이런 선생님을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 말을 하시면서 엄마는 또 다시 눈물을 글썽이셨다.
나는 그때 알았다. 어른들도 누군가의 따뜻함에 이렇게 감동할 수 있구나.
그날 저녁밥은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식사였다. 반찬이 많지 않아도, 집이 넉넉하지 않아도, 마음만은 풍성한 저녁이었다.
고마움과 감동이 밥상에 가득했다.
때로는 7만 원짜리 선물이
700만 원짜리 선물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
마음의 무게는 돈으로 재는 게 아니니까.
어떤 사람들은 당신의 인생 사진을
완성시키기 위해 나타난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축복이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
선생님은 나에게 5만 원 이상의 것을 가르쳐주셨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법. 남몰래 베푸는 따뜻함. 그리고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드는 법.
지금도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의 사진을 완성시켜줄 수 있을까?’
인생은 거대한 반 사진 같다. 누군가 빠지면 완성되지 않는.
그 사진 속에서 나를 꼭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하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다른 누군가의 사진을 완성시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어른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