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가끔 실수하잖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렴.”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인사였다. 하지만 그게 엄마와 마지막 작별일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날은 특별히 화창했고, 새들도 더 또롱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드라마처럼 불길한 징조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아주 좋은 날이었다.
“드르륵”
국어 시간 중이었다. 갑자기 “드르륵” 소리와 함께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상현아, 가방 챙겨서 밖으로 나오렴.”
교실 전체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뭔가 잘못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
“외삼촌 집으로 가보렴.”
선생님의 눈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 보였다. 이건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택시 안에서 든 생각]
택시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둘 중 하나야. 외할머니 아니면... 엄마.’
머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 답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외삼촌 집 문을 열자 외할머니가 소리 내어 우시고 있었다.
방바닥을 치며 그 이름을 부르고 계셨다. 듣고 싶지 않은, 내가 그토록 원하지 않던 그 이름을.
[선생님도 가끔 실수하잖아]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선생님들도 가끔 시험지를 잘못 채점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는 학생이 이의제기하면 다시 확인해서 고쳐주잖아.’
‘오늘 일도 뭔가 채점이 잘못된 거야. 맞아. 선생님도 가끔 실수하니까.’
하지만 눈앞의 외할머니 모습은 너무나 선명했다.
답은 분명해졌다. 외할머니는 아니었다.
인생에는 아무리 다시 채점해도
바뀌지 않는 답들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잘못된 채점이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 자체가
이미 사랑이었다.
[그날이 가르쳐준 것]
그날 나는 배웠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의 무게를.
어린 마음으로는 “이건 실수야, 다시 채점하면 달라질 거야”라고 믿고 싶었지만, 세상에는 정말로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걸.
하지만 동시에 이것도 배웠다. 그 ‘잘못된 채점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는 걸.
지금도 가끔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그날이 떠오른다.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은 바꿀 수 있다는 걸.
상실 앞에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도 결국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모든 이별이 가르쳐주는 것]
인생의 모든 이별은 잘못된 채점 같다.
“이건 실수야, 다시 하면 달라질 거야”라고 믿고 싶지만, 결국 우리는 그 답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배운다. 사랑하는 법을, 그리워하는 법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 법을.
그게 어른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