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가족이 셋이었다
[새로운 룸메이트들의 등장]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우리 집은 형과 나, 그리고 수십 마리의 바퀴벌레가 함께 사는 쉐어하우스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퀴벌레가 주인이고 우리가 세입자였다. 정체 모를 구석구석에서 갑툭튀하며 등장하는 그들은... 용의주도했다. 인간의 생활 루틴을 꿰고 있었다.
[라면의 3단 변신]
우리 형제는 거의 모든 끼니를 라면으로 해결했다.
아침: 끓여 먹고
점심: 스프를 밥에 말아 먹고
저녁: 부셔 먹었다
라면을 먹다 보면 잠시나마 세상 근심이 사라지는 듯했다. 물론, 바퀴벌레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라면 스프 향이 퍼지기 무섭게 부엌으로 단체 입장을 감행했다.
한 번은 내가 라면 끓이다가 잠깐 딴짓을 했는데, 바퀴벌레 한 마리가 냄비 속으로 푸슝— 다이빙을 했고, 난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때 형이 냄비를 들여다보더니 한마디 했다.
“얘는 오늘도 스프 맛을 보러 왔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새 냄비를 꺼냈다.
형은 위기에도 참 단단했다...
[TV 웃음소리에 의지한 저녁들]
가끔은 TV 소리에 의지해 허한 저녁을 버티기도 했다. 개그 프로그램의 짧은 유행어 하나에도 혼자 낄낄대며 웃다 보면, 부엌에 있던 형도 한마디 한다.
“그 와중에 너 웃음소리 너무 촌스럽다”
“그래도 나 웃기긴 웃기지?”
“라면보다 낫네.”
“우리도 이사 가자.”
그러던 어느 날 밤, 형이 다짜고짜 말했다.
“동생아, 우리도 이사 가자. 바퀴벌레가 너무 많아. 여기가 우리 집이 아니라 바퀴벌레들 집인 것 같아”
웃겼다. 아니, 그 시절엔 정말 그 한 마디에 엉엉 울 뻔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 웃기고, 너무 서글퍼서.
때로는 가장 어려운 시간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발견한다.
라면 하나를 나눠 먹으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을.
인생이 무너질 때도
웃음만은 무너뜨릴 수 없다.
그게 인간이 가진
가장 강한 생존 본능이다.
[생존의 기술, 웃음의 힘]
그 시절 우리는 생존의 기술을 배웠다. 라면 하나로 하루 세 끼를 해결하는 법, 바퀴벌레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법.
형과 나, 그리고 바퀴벌레들. 때로는 정말로 가족이 셋인 것 같았다.
[어른이 된 지금 깨닫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가난했지만 가장 진짜였던 시간이었다.
돈도 없고, 제대로 된 음식도 없었지만, 서로를 돌보는 마음만은 풍부했다. 형이 새 냄비를 꺼내주던 그 순간의 따뜻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려운 시간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인생에 ‘라면과 바퀴벌레’의 시간이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진 것 같고, 앞이 보이지 않는 그런 시간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희망.
그래도, 우리는 웃으며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