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버티는 법_5장 나타나지 않기로 한 저녁 6시

태산이에게 배운 진짜 우정의 의미

by 상현달

[비슷한 냄새]


“브라더, 이 문제 어떻게 푸는지 또 모르겠어”

태산이는 전학 온 첫날부터 내 짝이 되었다.

“브라더, 그래도 또 모르겠어. 한 번만 더 설명해줘.”

몇 번을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태산이에게, 나는 참을성 있게 다시 설명해줬다.

사실 나도 여유롭지 않았다. 엄마, 아빠 없이 형과 함께 살고 있었고, 선생님이 문제집을 따로 챙겨주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태산이를 보면 나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가난이라는 공통분모]


가난이라는 공통분모가 우리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태산이는 한 번도 자신의 집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도 태산이를 우리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서로의 부족함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더 마음이 통했다.

“그냥 학교에서만 친구하자.”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3년 만의 우연한 만남]


고등학교에 올라간 지 1년째, 길에서 우연히 태산이를 만났다.

“어! 브라더! 이게 얼마만이야.”

태산이는 밤새 일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1년의 시간이 우리를 완전히 다른 길로 이끌어놓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나 지금 돈 많이 벌거든. 너도 돈 많이 벌 수 있어.”

태산이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서비스업이야. 사람들 자리에 안내해주고 음식 날라주는... 크게 어렵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만 하면 돼.”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녁 7시에 시작해서 새벽 5시에 끝나는 일, 그곳에서 자고 먹고 지낸다는 것... 그게 어떤 곳인지.


[저녁 6시, 나타나지 않기로 한 선택]


“브라더, 여섯 시에 꼭 여기로 나와야 해!”

집에 돌아와 깊이 생각해봤다. 태산이의 선의는 진짜였다. 그 마음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은 그곳이 아니었다.

저녁 6시, 나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밤 형에게 태산이 이야기를 했다.

“형, 내가 잘한 걸까?”

형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진짜 친구라면 네가 공부하는 걸 응원해야지, 자기 길로 끌고 가려고 하면 안 되는거야.”

“하지만 태산이는 나를 도와주려고...”

“도움에도 방향이 있는 거야. 위로 끌어올리는 도움이 있고, 아래로 끌어내리는 도움이 있어.”


진짜 친구는 당신을 위로 끌어올린다.

자신의 외로움 때문에

당신을 아래로 끌어내리지 않는다.

때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답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용기일 수도 있다.



[20년 후, 선생님이 된 나]


지금 나는 선생님이 되었다. 몽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다.

가끔 태산이 같은 아이들을 만난다. 공부는 어려워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 그럴 때마다 태산이가 떠오른다.

태산이의 선의는 잊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도 후회하지 않는다.

태산이는 내게 두 가지를 가르쳐줬다.

첫째, 진짜 우정은 조건이 없다는 것. 가난한 나에게 아무 대가 없이 친절하게 대해준 그 마음.

둘째, 때로는 거절하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 친구의 제안을 거절한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거절하는 건 아니라는 것.


[어른이 된 지금 깨닫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선택이 우리 둘 다를 살렸다.

내가 만약 태산이를 따라갔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태산이도 나 때문에 더 깊은 늪에 빠졌을지 모른다.

진짜 사랑은 함께 망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나는 것이다.


[모든 어른들의 ‘저녁 6시’]


누구나 인생에서 자신만의 ‘저녁 6시’를 만난다.

친한 사람이 잘못된 길로 이끌려고 할 때, 선의로 포장된 위험한 제안을 받을 때. 그럴 때 나타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거절한다고 해서 사랑이 끝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일 수도 있다.

지금도 가끔 태산이가 궁금하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때의 어둠에서 벗어났을까?

태산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고마웠어. 네가 내게 보여준 순수한 우정, 잊지 않고 있어. 그리고 미안해. 그때 함께 가지 못해서. 하지만 그게 우리 둘 다를 위한 최선이었다고 믿어.”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어려운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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