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만남이 가르쳐준 것
[뉴스에서 본 그 놈]
하필이면 그 전날 밤, 뉴스에서 본 거다.
“철원 일대 멧돼지 다수 출몰... 농민 갈비뼈 부러져 병원 이송”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려던 내 손이 멈췄다. 화면 속 멧돼지는 살인 태클로 비닐하우스를 날리고 있었고, 부상당한 농부는 “뭐가 쾅! 하고 박더니 숨이 안 쉬어졌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소대원 중 하나가 장난처럼 말했다.
“소대장님, 내일 GOP 갈 땐 탱크 타고 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대답 대신 헛기침만 했다.
[10초가 10분 같았던 순간]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나는 진짜로 멧돼지를 만났다.
철책선을 따라 점검을 돌고 있었는데, 갑자기 쿵, 쿵 하는 묵직한 소리. 빛을 비추자, 수풀 너머에서 두 개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뉴스에서 본 그 놈이었다.
나도, 통신병도, 말 그대로 정지화면. 그 10초가 인생에서 가장 긴 10분이었다.
머릿속이 고속회전했다. ‘쏴야 하나? 거리는 너무 가깝고... 이러다 뉴스 인터뷰는 내가 하게 생겼다.’
나를 노려보던 멧돼지는 콧바람을 연거푸 뿜어 내더니 조용히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놈]
그렇게 간이 쪼그라든 채 걸음을 옮긴 지 10분쯤 지났을까.
텅! 텅텅텅텅!!
갑자기 뒤에서 누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 왔어!!!”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통신병과 함께 옆 고랑으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멧돼지가 아니었다. 고라니였다.
그 친구는 놀란 우리를 보더니, 자기도 당황했는지 급정거를 시도했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끼익~ 하며 그대로 앞으로 떼구르르르 굴러버렸다.
고라니 3회전 반, 공중회전, 착지 실패.
[매일이 놀람의 연속]
“고라니도 놀랐을 것 같습니다, 소대장님.”
통신병이 흙을 털며 말했다.
“우린 매일이 놀람의 연속이야.”
나는 말했다.
그날 이후 내 별명은 ‘빛의 속도 만큼 빠른 소대장’이 되었다.
나도 내가 이정도로 빠른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인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들이
나중에는 가장 웃긴 추억이 된다.
시간이 공포를 유머로 바꿔주는
마법사인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만남들이
우리 인생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멧돼지든, 고라니든,
아니면 특별한 사람이든.
[당황하는 것도 기술이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당황하는 것도 기술이라는 걸.
멧돼지 앞에서 얼어붙는 것, 고라니와 함께 구르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웃음으로 바꿔버리는 것. 그게 다 살아가는 기술이었다.
완벽하게 준비된 인생은 없다. 뉴스를 아무리 봐도, 매뉴얼을 아무리 외워도, 실제 상황은 항상 예상과 다르다.
[어른이 된 지금의 멧돼지들]
지금 일상에서도 갑자기 나타나는 멧돼지들이 있다.
예상치 못한 문제들, 계획에 없던 변수들, 브레이크 고장 난 고라니처럼 갑자기 굴러들어오는 상황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순간들도 언젠가는 웃으며 이야기할 추억이 된다는 걸.
당황해도 괜찮다. 넘어져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일어나서 털고 웃을 수 있는 마음이다.
[모든 어른들의 야생 생존기]
누구나 인생에서 자신만의 멧돼지를 만난다.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를 얼어붙게 만드는 것들, 예상치 못하게 굴러와서 함께 넘어뜨리는 것들. 하지만 그런 경험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더 유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재미있게 만든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야생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모두 나름의 생존 기술을 익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