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순수한 증오의 탄생

by 상현달

1980년 5월 25일, 오후 4시 15분.

5월의 햇살은 공기 중에 녹아든 솜사탕처럼 달콤했다. 놀이공원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기계들의 경쾌한 소음, 부모들의 다정한 목소리로 꽉 찬 행복의 용광로였다. 여덟 살 하늘이는 그 중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존재였다.

위아래로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회전목마의 하얀 말에 올라타, 멀리 보이는 부모님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방금 먹은 달콤한 캐러멜 팝콘 맛이 아직도 입가에 맴돌았다. 바로 옆 말에 탄 가장 친한 친구 준호와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 시시한 내기를 하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이 평화로운 오후가 영원할 것이라고, 하늘이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한순간에 검은 연기와 함께 재로 변했다.

“불이야!”

누군가의 절박한 외침이 군중의 소음을 갈랐다. 놀이공원 입구 쪽에서 시커먼 연기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행복의 용광로는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했다.

어른들의 비명,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거대한 공포의 교향곡을 연주했다. 하늘이는 본능적으로 회전목마에서 내리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안전벨트가 쇳덩이처럼 몸을 꽉 누르고 있었다.

“아저씨! 이거 안 풀려요!”

그녀의 외침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비명 속에 묻혔다. 놀이기구 관리원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본 하늘이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회전목마에 타고 있던 47명의 아이들 모두가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어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불길은 입구 쪽에서만 거세게 타오를 뿐, 어째서인지 회전목마가 있는 중앙 광장 쪽으로는 조금도 번지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리벽이 불길을 막고 있는 것처럼. 겁에 질린 몇몇 아이들이 비상구를 향해 달려가 문을 걷어찼지만, 밖에서 거대한 빗장이라도 걸어 잠근 듯 끄떡도 하지 않았다. 공포보다 더 큰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위화감이었다. 이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너무나 정교하게 설계된, 아이들만을 위한 거대한 덫이었다.

그때, 그들이 나타났다. 방호복처럼 보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스크와 고글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어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불타는 지옥 속에서 유일하게 침착한, 그래서 더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훈련받은 대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괜찮다, 얘들아. 놀라지 마라.”

그들 중 한 명이 든 확성기에서 나온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감정이 없었다.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울부짖는 아이들의 절규에도 그는 마치 녹음된 음성을 트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답했다.

“부모님들은 먼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셨다. 너희도 곧 만나게 될 테니, 우리 지시에 잘 따라주길 바란다.”

하얀 옷의 사람들은 회전목마에 올라와 아이들의 안전벨트를 하나씩 풀어주기 시작했다. 안도감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다른 쪽 손에 들린, 은색으로 번쩍이는 주사기를 본 순간, 하늘이의 등골을 타고 차가운 소름이 흘러내렸다.

“이게 뭐예요?”

준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정제란다. 연기를 많이 마셔서 흥분했을 수 있으니, 안정을 위한 예방 차원이야.”

너무나 그럴듯한 이유였다. 하지만 하늘이는 마스크 너머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 남자의 눈을 보았다. 그 눈에는 아이를 구하러 온 자의 다급함이나 안도감이 아닌, 수집한 곤충 표본을 관찰하는 듯한 차갑고 무감정한 호기심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아저씨... 이상해요...”

하늘이의 작은 저항은 소용없었다. 차가운 바늘이 연약한 팔의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감촉과 함께, 의식은 순식간에 끈적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회전목마 전체가 마치 거대한 엘리베이터처럼 삐걱거리는 굉음과 함께 땅 아래로, 더 깊고 축축한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장면이었다.

눈을 떴을 때, 하늘이는 딱딱하고 차가운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사방은 이음새 하나 보이지 않는 온통 하얀색의 벽이었고, 천장에서는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인공적인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창문도, 시계도 없었다.

공기 중에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아 오히려 코가 마비되는 듯한, 완벽한 무균실이었다. 문에는 ‘실험실 A-1’이라는 냉정한 표식이 붙어 있었다. 옆 침대에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준호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그때, 문이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열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40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책임 연구원’이라고 소개했다.

“여기가 어디예요? 우리 엄마, 아빠는요?”

“여기는 너희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곳이란다. 바깥세상은 이제 너희에게 너무 위험해졌거든.”

그의 목소리는 꿀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내용은 칼날처럼 차가웠다. 그는 손에 든 클립보드에 무언가를 기록하며 말을 이었다.

“너희는 공식적으로 죽었단다. 어제 저녁 9시 뉴스, 봤으려나? ‘씨랜드 화재 참사, 어린이 47명 전원 사망.’ 앵커의 슬픔에 잠긴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구나. 세상은 너희를 위해 울어주었고, 곧 잊을 것이다. 아무도 너희를 찾지 않아. 완벽한 실험 환경이 조성된 셈이지.”

“실험... 이요?”

하늘이의 목소리가 공포로 잠겨들었다.

“그래, 인류의 진보를 위한 위대한 실험. 우리는 정부의 극비 프로젝트를 위임받았단다. ‘순수한 증오’의 생성과 증폭, 그리고 그 에너지의 활용 가능성에 대한 연구. 정말 가슴 뛰는 일 아니니?”

연구원은 하늘이를 흥미로운 관찰 표본처럼, 혹은 이제 막 부화한 희귀 생명체처럼 내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렴. 어른들의 증오는 얼마나 복잡하고 불순한가. 탐욕, 질투, 시기, 이해관계 같은 온갖 불순물로 가득 차 있지. 하지만 아이들의 증오는 달라. 버림받았다는 배신감, 무력감, 세상 전체에 대한 순수한 원망. 우리는 그 순수함에 주목했단다. 그런 순수한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된 고립 환경에서 45년간 키워낸다면, 과연 어떤 경이롭고 강력한 힘이 태어날까? 우린 그게 너무나 궁금했어.”

하늘이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45년. 그럼 자신이 쉰세 살이 될 때까지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거짓말!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란다.”

연구원은 태연하게 벽의 스크린을 켰다. 화면에는 슬픔에 잠긴 앵커의 얼굴과 함께, ‘어린이 47명 전원 사망’이라는 자막, 그리고 불타는 놀이공원과 오열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비쳤다. 자신들의 영정 사진 앞에서 넋을 잃고 주저앉은 엄마의 모습을 본 하늘이의 마지막 희망이 산산조각 났다.

연구원이 새로운 주사기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투명한 액체가 아니었다. 끈적하고 검붉은, 마치 피와 같은 액체였다.

“이제 진짜 실험을 시작해야지. 아이들의 순수한 감정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실험을.”

주사기가 하늘이의 팔에 꽂혔다. 진정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관통했다. 마치 혈관 속에 불타는 쇳물을 붓는 것 같았다. 뼈마디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뒤틀리는 듯했다.

“아파요! 너무 아파요!”

“당연히 아파야지. 고통이야말로 성장의 가장 좋은 자양분이니깐. 이 약은 너희 몸을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 줄 거다. 영원히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게. 오직 순수한 감정을 담는 완벽한 그릇으로 말이지.”

“왜... 왜 우리한테 이런 짓을 해요!”

“연구를 위해서.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지. ‘순수한 증오’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어떤 핵무기보다도 강력한 전략 병기가 될 수 있거든. 상상해 보렴. 적국의 수뇌부를 하룻밤 사이에 미쳐버리게 만들 수도 있고, 국민 전체를 무기력과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어. 너희는 그 위대한 역사의 첫걸음이 되는 거란다. 영광스럽지 않니?”

하늘이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그를 노려보았다.

“아저씨는... 미쳤어...”

“미쳤다고? 하하, 그럴지도. 하지만 모든 위대한 과학은 광기에서 시작되는 법이지.”

연구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벽에 걸린 프로젝트 계획표를 가리켰다.

프로젝트명: 케르베로스(KERBEROS)

실험 대상: 신원 말소된 8세 아동 47명

실험 기간: 45년 (1980.05.25 ~ 2025.05.24)

실험 목적: 순수 증오 에너지의 생성, 증폭 및 무기화 가능성 연구

예상 결과: 시공간 제어, 물질 변형 등 초자연적 능력의 발현

그는 문 쪽으로 향하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45년 후에 다시 만나자. 그때 너희가 어떤 위대한 존재로 변해있을지, 정말 기대가 되는구나.”

문이 닫히고, 하늘이는 완벽한 어둠과 고통 속에 혼자 남았다.

그 순간부터 진짜 지옥이 시작되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고통스러운 주사를 맞았다. 온몸의 세포가 타들어 가는 듯한 약물이었다. 음식은 생명을 유지할 최소한만 주어졌다. 굶주림이 분노를 키운다는 것이 연구원들의 이론이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일주일에 단 한 번, 두꺼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허락되었다. 서로의 절망하는 얼굴을 보며 고립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아이는, 하루아침에 이름 대신 실험체 ‘A-1’로 불리는 존재가 되었다. 울음은 더 이상 위로받지 못했고, 저항은 더 큰 고통으로 돌아왔다. 그리움과 슬픔, 공포 같은 연약한 감정들이 있던 자리에,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가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복수의 회전목마는, 바로 그날부터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주 느리고, 잔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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