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어른을 아이로 만드는 법

by 상현달

“가족들이 제일 쉬워.”

하늘이가 현우의 집 앞에서 말했다. 2층 단독주택이었다. 마당에는 아이들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왜?”

민수가 물었다. 아직도 45년간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 이 모든 일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가족은 서로를 믿거든. 아빠가 변해서 와도 의심하지 않아.”

재훈이가 웃었다.

“특히 아이들은 더 쉬워. 아이들은 원래 우리 편이니까.”

아이가 된 현우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벌써 왔어? 일찍 끝났네.”

“응! 재밌는 일이 생겼어!”

현우의 목소리는 완전히 여덟 살 아이였지만, 아내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뭔 일?”

거실에서 나온 아내가 현우를 보고 멈춰 섰다. 하지만 놀라지 않았다. 그저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여보... 왜 이렇게 어려 보여?”

“진짜 어려졌어! 여덟 살이 됐어!”

현우가 팔짝팔짝 뛰었다.

“그게 무슨...”

“손 잡아봐! 정말 신기해!”

현우가 아내의 손을 잡는 순간, 아내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앗... 뜨거워... 그런데 좋아...”

아내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졌다. 40대 여성의 몸이 서서히 작아지기 시작했다.

민수는 창문 너머로 이 장면을 지켜봤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엄마, 뭐해?”

계단에서 내려온 것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였다. 현우의 아들이었다.

“아, 진우야!”

이제 아이가 된 현우의 아내가 아들에게 달려갔다.

“엄마가 어려졌어! 이제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어!”

“엄마?”

진우는 당황했다. 엄마가 자신보다 어려 보였다.

“응! 이제 우리 같이 놀 수 있어!”

현우의 아내가 아들의 손을 잡았다.

“엄마, 손이 뜨거워...”

“괜찮아, 금방 시원해질 거야.”

진우도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어린아이여서 변화가 다른 방향이었다.

그의 눈에서 순수함이 사라지고, 45년간 쌓인 증오가 스며들었다. 겉모습은 그대로였지만, 내면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이해됐어, 엄마.”

진우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어른들은 정말 나빠. 우리를 속이고, 이용하고, 버리잖아.”

“맞아, 진우야. 이제 알았구나.”

현우가 아들을 안았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어른들을 아이로 만들어야 해.”

이때 현관문이 열렸다. 고등학생인 현우의 딸이 학교에서 돌아온 것이었다.

“엄마, 아빠, 왔어... 어?”

딸은 거실에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수진아!”

현우가 딸에게 달려갔다.

“아빠야! 아빠가 여덟 살이 됐어!”

“아빠? 무슨 소리야...”

수진이 뒤로 물러섰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아빠 목소리였는데 여덟 살 아이의 모습이었다.

“수진아, 놀라지 마.”

이번에는 엄마였다. 역시 여덟 살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가 진짜 행복해졌어. 너도 우리처럼 되면 좋겠어.”

“이... 이게 뭐야? 꿈이야?”

수진이 벽에 등을 대고 섰다.

“꿈이 아니야. 현실이야. 정말 좋은 현실이야.”

진우가 누나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진우의 눈에는 더 이상 형제애가 없었다. 오직 목적만 있었다.

“누나도 우리처럼 돼. 그럼 영원히 함께 놀 수 있어.”

“싫어! 오지 마!”

수진이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세 명의 아이들이 뒤쫓았다.

“누나, 도망가지 마!”

“우리는 누나를 사랑해!”

“그래서 누나를 우리와 같게 만들어주려는 거야!”

2층에서 수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금세 조용해졌다.

민수는 창문 너머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만족감도 느꼈다.

한 가족이 완전히 ‘순수’해졌다. 어른들의 거짓과 위선이 사라지고, 오직 진실한 감정만 남았다. 증오와 복수라는 진실한 감정이.

“저들을 봐.”

하늘이가 민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얼마나 쉬운지. 가족들은 서로를 의심하지 않아.”

잠시 후 집에서 네 명의 아이가 나왔다. 김현우 가족 전체였다. 모두 여덟 살 정도의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45년간의 증오가 담겨 있었다.

“이제 이웃집도 가볼까?”

현우가 제안했다.

“좋아!”

나머지 가족들이 동의했다.

그들은 옆집으로 향했다. 평범한 가족의 집이었다. 저녁 준비를 하는 아내와 TV를 보는 남편,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었다.

현우가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옆집 김현우예요!”

문이 열렸다. 40대 남자가 나왔다.

“아, 현우씨... 어? 현우 친척 아이들이야?”

“아니요. 다 저희 가족이에요.”

현우가 웃었다.

“모두 여덟 살이 됐어요. 정말 행복해요.”

이웃집 남자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하, 재밌네. 아이들이 귀엽긴 하지만...”

“정말이에요.”

현우의 아내가 남자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도 우리처럼 되실래요?”

“뭔 소리... 앗, 뜨거워!”

변화가 시작됐다.

민수는 거리를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집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변한 십여 명의 작업자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친구’로 만들고 있었다.

“저기 봐.”

서연이가 한 집을 가리켰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거실에서 네 명의 아이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30분 전까지는 네 명의 어른이었을 것이다.

“저기도 봐.”

하늘이가 다른 집을 가리켰다. 현관 앞에서 여덟 명의 아이들이 웃고 있었다. 대가족이었나 보다.

“이제 이 동네는 거의 다 우리 편이야.”

민수가 말했다. 이상하게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다른 동네로 가볼까?”

하늘이가 제안했다.

“어떻게?”

“아이들은 학교에 가잖아.”

서연이가 웃었다.

“내일 아침에 새로 만들어진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도 친구가 될 거야.”

민수는 상상했다. 수십 명의 ‘여덟 살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의 손을 잡는 모습을. 그리고 그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과 접촉하는 모습을.

“학교가 끝나면 전체가 될 거야.”

“그럼 그 선생님들이 집에 가서...”

“맞아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야.”

민수는 계산해봤다. 이 동네만 2000가구 정도였다. 한 가구당 평균 3명이라면 6000명. 그들이 학교와 직장에 가면...

“일주일이면 이 도시 전체가 될 것 같은데?”

“그렇지. 그리고 한 달이면...”

하늘이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국이 될 거야.”

세 아이는 언덕 위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봤다. 아직은 평범한 도시였지만, 곳곳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는 평범한 아이들의 것이 아니었다. 45년간의 증오가 담긴 소리였다.

“이제 진짜 재밌어질 것 같아.”

서연이가 손뼉을 쳤다.

“모든 어른들이 사라지고, 착한 아이들만 남는 세상이.”

“착한 아이들이라...”

민수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착한 아이들 맞아?”

"물론이지."

하늘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거짓말하지 않아. 어른들처럼 속이지도 않고.”

“우리는 솔직해. 싫은 사람은 싫다고 하고, 혼내주고 싶으면 혼내줘.”

“그게 더 정직한 거잖아?”

민수는 그들의 논리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45년간 어른으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던가. 얼마나 많은 가식을 떨었던가.

지금이 더 진실했다. 더 순수했다.

“그런데...”

민수가 문득 물었다.

“정말 모든 어른을 없앨 거야?”

“어.”

하늘이와 서연이가 동시에 대답했다.

“전 세계 모든 어른들을.”

그들의 눈에 광기가 서렸다. 하지만 그것은 미친 광기가 아니었다. 너무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광기였다.

45년간 계획해온 완벽한 복수였다.

“그럼 세상이 어떻게 될까?”

“좋아질 거야.”

서연이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른들이 만든 더러운 세상이 사라지고, 우리가 만든 깨끗한 세상이 될 거야.”

“전쟁도 없고, 거짓말도 없고, 이기심도 없는 세상.”

하늘이가 덧붙였다.

민수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어른들이 망쳐놓은 세상보다는 아이들이 만들 세상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도시에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불빛들은 더 이상 어른들의 것이 아니었다.

이전 03화3장 - 첫 번째 친구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