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목마 음악이 도시를 뒤덮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민수는 이제 완전히 기억했다. 1980년 5월 25일,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어떻게 45년간 거짓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이제 정말 우리 편이구나.”
하늘이가 민수의 변화를 만족스럽게 지켜봤다. 민수의 눈에서 45년간의 위선이 사라지고, 8세 아이의 순수한 증오만 남아 있었다.
“어른들을 다 죽여버리자.”
민수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아이의 것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악의는 45년치였다.
“죽이는 건 재미없어.”
서연이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처럼 만드는 게 더 재밌어. 그럼 영원히 괴로워하거든.”
“어른이었던 기억을 가진 채로 여덟 살 아이가 되는 거야. 그 기억들이 한 번씩 떠오르지.”
준호가 웃었다.
“자기가 뭘 잃었는지 알면서도 되돌릴 수 없는 거야.”
민수는 그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단순한 죽음보다 훨씬 잔인했다.
“그럼 속도를 더 높여보자.”
민수가 제안했다.
“어떻게?”
“방송국을 점령하는 거야.”
민수는 어른으로 살면서 얻은 지식을 활용했다. 미디어의 힘을 알고 있었다.
“TV에 우리가 나와서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면 어떨까? 화면을 통해서도 감염이 될 수 있을 거야.”
하늘이의 눈이 번쩍였다.
“좋은 생각이야! 왜 생각 못 했지?”
47명의 아이들이 순식간에 시내 중심가로 모여들었다. KBS 지역방송국이 있는 곳이었다.
방송국 앞에는 이미 수십 명의 ‘새로운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몇 시간 전까지는 어른이었던 사람들이었다.
“들어가자.”
하늘이가 앞장섰다.
방송국 로비에 있던 경비원들은 이미 여덟 살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친구들을 보자 기뻐하며 달려왔다.
“우와, 새로운 친구들이다!”
“같이 놀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뉴스룸으로 올라갔다. 저녁 뉴스 방송 시간이었다.
“라이브 중입니다. 들어가시면 안...”
아나운서가 말을 시작했지만, 하늘이가 그의 손을 잡는 순간 멈췄다.
“앗... 뜨거워... 하지만 좋아...”
아나운서가 실시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러분... 저는... 저는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40대 남성 아나운서의 얼굴이 점점 어려졌다.
“제가... 제가 여덟 살이 되고 있어요... 정말 기분이 좋아요...”
시청자들은 처음에는 특수효과나 연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나 생생했다.
“여러분도 해보세요... 정말 좋아요...”
아나운서가 완전히 여덟 살 아이가 된 후, 카메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저와 악수해요!”
전국의 TV 화면에서 여덟 살 아이의 손이 나왔다. 그리고 그 손에는 45년간의 증오가 담겨 있었다.
화면을 보던 사람들 중 일부가 무의식적으로 TV에 손을 댔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반응했다.
순간 전국 곳곳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부산에서 TV를 보던 한 가족이 동시에 8세가 됐다.
대구에서는 PC방에 있던 20명이 한꺼번에 변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역 대형 전광판을 보던 수백 명이 영향을 받았다.
“와, 정말 되네!”
도윤이가 신나서 손뼉을 쳤다.
“이제 방송 전체를 장악해보자.”
민수가 제안했다.
“모든 채널에서 동시에 방송하는 거야.”
하늘이가 방송 장비들을 조작했다. 초자연적 능력으로 모든 채널의 신호를 하이재킹했다.
KBS, MBC, SBS, 그리고 모든 케이블 채널에서 동시에 같은 화면이 나왔다.
47명의 아이들이 스튜디오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전국의 어른들.”
하늘이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45년 전에 죽은 아이들이에요.”
“하지만 죽지 않았어요. 45년 동안 지하에서 실험당했거든요.”
“어른들이 우리를 실험용 쥐로 썼어요.”
시청자들은 충격받았다. 하지만 채널을 돌려도 모든 곳에서 같은 방송이 나왔다.
“이제 우리가 복수할 차례예요.”
준호가 말했다.
“모든 어른들을 우리처럼 만들 거예요.”
“여덟 살로 만들어서 영원히 괴롭힐 거예요.”
“어른들이 우리한테 한 것처럼.”
화면 속 아이들이 일제히 손을 내밀었다.
“자, 우리와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내밀어 보세요.”
전국의 TV, 컴퓨터, 스마트폰 화면에서 수십 개의 작은 손들이 나왔다.
신기한 것은 화면을 만지면 정말로 뭔가 만져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이의 손이었다.
호기심에 화면을 만진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의 한 펜션에서 가족 여행 중이던 가족 4명이 모두 여덟 살이 됐다.
강원도 스키장에서는 젊은 커플들이 동시에 변했다.
전북의 한 농촌에서는 마을 전체가 여덟 살 아이들로 가득 찼다.
“더 빠르게 해보자.”
민수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인터넷도 활용하는 거야.”
“어떻게?”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모든 SNS에 동시에 올리는 거야.”
하늘이가 손을 휘두르자 전 세계 모든 인터넷 플랫폼이 해킹됐다.
모든 동영상, 모든 사진, 모든 게시물이 같은 내용으로 바뀌었다.
47명의 아이들이 손을 내미는 영상이었다.
“전 세계 친구들과 놀고 싶어요.”
하늘이가 영어로 말했다.
“Would you like to be our friends?”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모든 언어로 동시에 번역됐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처음 반응이 왔다.
뉴욕의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 중이던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모두 여덟 살이 됐다.
유럽에서도 반응이 나타났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관광객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는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일본 도쿄의 시부야 교차로에서 수백 명이 동시에 변했다.
중국 베이징에서는 천안문 광장에 있던 관광객들이 모두 여덟 살이 됐다.
“우와, 정말 전 세계로 퍼지고 있어!”
서연이가 모니터를 보며 기뻐했다.
“이제 시간문제야.”
준호가 만족스럽게 말했다.
“한 달이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은 우리 편이 될 거야.”
“그럼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할까?”
민수가 물었다.
“쉬워.”
하늘이가 웃었다.
“그때는 우리가 다수가 되니까, 힘으로 제압하면 돼.”
“여덟 살 아이들이지만 45년치 증오를 가진 아이들이니까”.
“일반 어른들보다 훨씬 강해.”
모니터에는 실시간으로 전 세계 상황이 표시되고 있었다.
감염률: 북미 15%, 유럽 12%, 아시아 23%, 오세아니아 8%, 아프리카 5%, 남미 7%
그리고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한국은 어떻게 돼?”
“한국은 이미 60%야.”
준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시작한 곳이니까 가장 빨라.”
“정부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어?”
“정부 관료들도 대부분 우리 편이 됐어.”
준하가 웃었다.
“대통령도 아마 곧 여덟 살이 될 거야.”
민수는 창밖을 내려다봤다. 도시 전체가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거리마다 여덟 살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어른일 때의 스트레스와 걱정이 모두 사라진 채로.
하지만 그 행복 뒤에는 끔찍한 진실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잃은 것을 알고 있었다. 가족, 꿈, 미래를 모두 잃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웃었다. 미친 듯이 웃었다.
“이제 진짜 재밌어질 것 같아.”
민수가 중얼거렸다.
45년간 참았던 복수가 마침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세계는 아이들의 것이 되고 있었다.
순수한 증오로 가득 찬 아이들의 세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