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119: 나는 너의 가장 완벽한 지옥
강도운이 온 뒤로, 서하진의 지하 7층은 변했다. 차갑고 고요하기만 하던 성역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강도운이라는 변수는 더 이상 불협화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존재는 하진의 세계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느껴졌다. 그는 바이러스처럼 침투했지만, 이제는 시스템의 안정성을 책임지는 가장 강력한 백신이 되어 있었다.
밤샘 작업이 세 시간째 이어져 뇌가 뻑뻑한 젤리처럼 굳어갈 때면, 귀신같이 그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샷을 추가한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그녀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디저트인 피스타치오 마카롱이 들려 있었다.
“잠깐 쉬면서 하세요. 뇌도 산소가 필요합니다.”
하진은 놀라 묻곤 했다.
“제가 이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취향이었다. 그러면 그는 늘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요. 수석님 이미지랑 어울려서 사 와 봤는데, 다행히 좋아하시네요.”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하진은 그 우연을 ‘운명’의 다른 이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복잡한 알고리즘의 벽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면, 그의 손길이 닿은 키보드 위에서는 마법처럼 해결책이 피어났다. 그는 정답을 직접 알려주지 않았다. 언제나 결정적인 힌트를 던져, 마지막 해답은 하진 스스로 찾아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그녀의 천재성을 칭송했다.
“이걸 이렇게 풀어내실 줄이야. 역시 서하진 수석님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의 칭찬은 하진의 자존감을 먹고 자라는 달콤한 양분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적막하던 연구실 스피커에서는 낮은 볼륨의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혼자 있을 때만 즐겨 듣던,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인디 밴드의 생소한 앨범이었다. 너무 놀라 그를 돌아보면, 그는 자신의 모니터에 집중한 척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음악이 너무 없는 것도 집중력을 떨어뜨린다고 해서요. 시끄러우면 바로 끌게요.”
그가 어떻게 자신의 취향을 알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의 세심한 배려가 주는 안락함 속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점차 그녀는 도운 없이는 코드를 짜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막다른 길에 부딪혔을 때, 그의 도움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안정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힘으로 벽을 넘으려는 의지를 미세하게 갉아먹었다.
그의 칭찬 없이는 자신의 결과물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코드를 완성하고도 그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는 섬뜩해질 때도 있었지만, 이내 그의 따뜻한 미소 앞에서 모든 불안감을 내려놓았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녀의 시스템을 구동하는 새로운 운영체제(OS)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진은 이 모든 것을 ‘이해’와 ‘공감’이라 믿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공유할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강도운은 그녀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했고, 그녀의 세계를 존중했으며,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제공했다. 그는 그녀를 위한 완벽한 낙원을 설계했다. 혼돈도, 오해도, 상처도 없는 곳.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안전한 에덴동산.
하지만 그녀는 깨닫지 못했다.
낙원의 문이, 소리 없이 닫히고 있다는 것을.
그녀를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던 그 견고한 성벽은, 이제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고립시키는 감옥의 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를 이해해주던 그의 다정한 시선은, 그녀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감시자의 눈빛과 다르지 않았다.
어느 늦은 밤, 두 사람만 남은 연구실에서 하진은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아... 얼마 전에 TV에서 본 그 짬뽕, 진짜 맛있겠다.”
특별한 의미 없이 허공에 던진 말이었다.
다음 날.
그녀의 책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짬뽕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시내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배달은 하지 않아 직접 가야만 먹을 수 있는 바로 그 중국집의 것이었다.
“어제 수석님 혼잣말하시는 걸 들어서요. 마침 오늘 외근 나갔다가 오는 길이라 사 왔습니다.”
강도운이 웃으며 말했다. 하진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위화감을 느꼈지만, 이내 그의 세심함에 대한 감동으로 그 감각을 덮어버렸다.
그녀는 그가 건네주는 달콤한 사과를 의심 없이 받아먹으며, 스스로 낙원의 죄수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에덴동산의 유일한 거주자는, 이제 신이 건네는 음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낙원의 문은 이미 굳게 잠겼다. 그리고 그 열쇠는, 그녀가 아닌 강도운이 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