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119: 나는 너의 완벽한 지옥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하진은 평소보다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연구소에 들어섰다. 주말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알고리즘의 실마리를, 출근길 지하철에서 강도운이 추천해 준 논문을 읽다가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의 세계에서 강도운은 단순한 동료가 아니었다. 그녀의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촉매제이자, 그녀의 능력을 완성시켜주는 마지막 조력자였다. 그의 존재가 없는 지하 7층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자, 언제나처럼 책상 한편에 따뜻한 라떼 한 잔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메모지 하나.
‘좋은 아침입니다. 주말은 잘 보내셨어요? 유준이는 좀 괜찮고요?’
서유준.
그녀의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장 소중한 이름. 선천적인 심장병을 앓고 있는 남동생.
하진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순간 멈췄다. 심장이 차갑게 식어 내리는 감각. 유준의 일은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그녀가 자신의 성벽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비밀이었다. 유준의 이름이, 그의 필체로 쓰인 메모지 위에 저렇게 무심하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등 뒤에 눈이라도 달린 듯, 강도운이 어느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부드럽게 물었다.
“주말에 병원 다녀왔나 봐요? 표정이 안 좋으시길래.”
“어, 어떻게...?”
하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아, 별거 아닙니다.”
도운은 태연하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선배님 동생분 SNS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병원복 입고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걱정돼서요. 제가 오지랖이 넓었나요?”
그의 대답은 너무나 논리적이고 평범해서, 하진은 순간 자신의 과민반응을 탓할 뻔했다. 하지만 즉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전 SNS 안 하는데요. 그리고... 제 동생 계정은 비공개예요. 가족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어요.”
연구실의 공기가 순간 정지했다. 서버의 백색소음마저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진의 차가운 지적에, 강도운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서글서글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잠시 하진을 바라보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니터를 그녀 쪽으로 천천히 돌렸다.
화면에는 하진이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데이터가 떠 있었다. 녹색의 선이 일정한 간격으로 오르내리는 그래프. 초당 한 번씩 정확하게 깜박이는 작은 점. 그것은 생명의 리듬, 심장의 박동이었다. 그래프의 좌측 상단에는 선명한 글자가 박혀 있었다.
Subject: Seo, Yujun. Heart Rate: 72bpm (Stable)
“유준이, 심박동기 달고 있잖아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긋나긋했지만, 그 안에는 이전에는 없던 차가운 금속성이 섞여 있었다.
“인터넷으로 실시간 모니터링이 되는 최신형이던데, 세상에. 보안이 너무 허술하더라고요. 어느 동네 바보라도 마음만 먹으면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제가 좀 강화해줬습니다. 수석님 가족의 안전은 소중하니까요.”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온기를 가진 미소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쥔 자의 서늘한 미소였다.
“이제 저 말고는, 이 세상 누구도 유준이 심장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하진의 귓가에 사형 선고처럼 박혔다. 남동생의 심장이, 그의 마우스 클릭 한 번에 멈출 수도, 혹은 미친 듯이 폭주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내 세계의 유일한 약점, 내가 가진 단 하나의 아킬레스건이, 그의 손아귀에 완벽하게 잡혔다. 그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그래서 세상과 담을 쌓고 스스로를 유폐시켰던 이유가, 이제 그녀의 목을 겨누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가 신뢰했던 관리자는 없었다.
처음부터 그곳에는, 먹잇감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마침내 심장을 움켜쥔, 영리한 포식자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가 설계한 완벽한 낙원은, 그녀의 동생을 인질로 삼아 세워진, 절대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이었음을, 하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의 세계는 이제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