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는 너의 공범

Love119: 나는 너의 가장 완벽한 지옥

by 상현달

다음 날 아침, 연구소의 공기는 무겁고 서늘했다. 마치 누군가 밤새도록 거대한 얼음덩이를 가져다 놓은 것처럼, 사람들의 숨결마저 차갑게 느껴졌다. 소문의 진원지는 박 대리의 자리였다.


그는 텅 빈 눈으로 자신의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난 10년간의 피와 땀이 담긴 연구 자료가, 단 한 톨의 먼지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증발해버린 후였다. 그는 망연자실했고, 주변 동료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위로를 건네거나, 혹은 범인을 찾지 못할 기술팀의 무능함을 탓하며 수군거렸다.


하진은 그 모든 광경을 유리 벽 너머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범인을 알고 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어젯밤, 엔터 키를 누르던 손가락의 차가운 감촉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녀의 손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지워버린 것이다. 죄책감이 검은 잉크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때, 모니터에 메신저 알림이 떴다. 강도운이었다.


[강도운] 잘했어요, 나의 여왕님.


그의 메시지를 읽는 순간, 하진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여왕님’. 그것은 칭송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에 놀아난 꼭두각시에 대한 조롱이자, 이제 너와 나는 같은 편이라는 끔찍한 연대 선언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맞은편에 앉은 강도운이 그녀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우리가 해냈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그날부터 하진은 공범이 되었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도운의 범죄에 동참하는 유일한 파트너.


그의 지시는 점점 더 대담하고 빈번해졌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녀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다른 팀 연구원의 커피에 소금을 타게 하거나, 그녀의 의견을 무시했던 팀장의 프레젠테이션 파일에 일부러 오류를 심어 망신을 주게 하는 식이었다. 그런 지시를 내릴 때마다 그는 언제나 ‘우리의 적을 응징하는 것’이라고, ‘선배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일’이라고 포장했다.


하진은 저항하고 싶었다. 이건 미친 짓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주 잠시라도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면, 강도운은 말없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그녀에게 힐끗 보여주었다. 그 작은 화면 속에는 어김없이, 동생 유준의 심박수가 실시간으로 뛰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작은 그래프 하나가, 그녀의 모든 저항 의지를 꺾어버리는 가장 강력한 족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더 큰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선배, 경쟁 팀에서 진행하는 ‘타이탄 프로젝트’, 너무 거슬리지 않아요? 그게 성공하면 우리 팀 입지가 좁아질 텐데.”


타이탄 프로젝트는 연구소의 사활이 걸린 차세대 보안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였다. 하진 역시 과거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팀 간의 알력 다툼으로 배제된 아픈 기억이 있었다. 강도운은 그녀의 그런 과거까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저들이 만든 시스템의 핵심 코드에, 아주 작은 백도어(Backdoor) 하나만 심어두는 겁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오직 우리만 아는 비밀 통로. 그러면 나중에 우리가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은 연구소를 배신하는 명백한 이적 행위였다.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안 된다. 이건 동료의 자료를 삭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강도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선배를 배제했던 저들에게 복수할 좋은 기회잖아요. 그리고... 유준이 심박수가 조금 불안정해 보이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좋을 텐데 말이죠.”


결국 하진은 그의 명령을 따랐다. 그녀는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이제 동료의 등을 찌르는 비수를 만드는 데 사용해야 했다. 그녀의 손으로 경쟁 팀의 시스템에 악성 코드를 심고, 그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준비를 하면서, 그녀의 영혼은 서서히 갉아 먹혔다.


그녀의 손은 더러워졌고, 그녀가 쌓아 올린 코드의 성은 오염되었다. 한때 자신의 자부심이었던 재능은 이제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저주가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0과 1의 세계에 숨는 순수한 연구자가 아니었다. 타인의 불행을 먹잇감 삼아, 동생의 목숨을 연명하는 괴물의 공범일 뿐이었다.


어느 날 밤, 모두가 퇴근한 연구실에 홀로 남아 모니터를 응시하던 하진은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것은 지옥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지옥을 설계한 악마의 유일한 공범이다.


그녀는 이제 저항을 포기했다. 아니, 저항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의미했다. 동생의 심장이 그의 손에 잡혀있는 한, 그녀는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춤을 추는 마리오네트일 뿐이었다.

그녀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창밖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자신의 영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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