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119: 나는 너의 가장 완벽한 지옥
그날 이후, 하진의 세계에서 밤과 낮은 의미를 잃었다.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순간이 감시의 시간이었고, 눈을 감아도 꺼지지 않는 녹색 불빛의 잔상이 망막을 파고들었다.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24시간 생중계되는 거대한 무대였고, 그녀는 그 위에서 절망과 공포를 연기하는 유일한 배우였다. 관객은 단 한 사람, 강도운이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과시했다. 하진이 무심코 한숨을 쉬면, 몇 초 뒤 휴대폰으로 ‘무슨 힘든 일 있어요?’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그녀가 읽고 있던 책의 특정 구절에 오래 시선이 머물면, ‘그 작가, 저도 좋아하는데’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하진의 모든 것을 보고 있었고, 그 사실을 그녀가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상기시켰다. 그녀의 삶은 그의 손아귀 안에서 실시간으로 관람당하는 콘텐츠가 되어버렸다.
견딜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이성의 끈이, 마침내 한계에 다다라 끊어졌다.
연구소의 텅 빈 복도, 단둘이 마주친 순간, 하진은 그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이건 사랑이 아니야! 넌 날 이용하는 거고, 날 망가뜨리고 있는 거야! 이건 범죄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지난 몇 주간 억눌러왔던 모든 분노와 공포, 억울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주변을 지나던 몇몇 동료들이 놀라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강도운은 태연했다.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상했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그는 하진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내리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석님, 많이 힘드셨군요. 잠깐 저랑 옥상에 좀 올라가시죠. 다른 사람들 없는 곳에서, 우리끼리 얘기 좀 해요.”
그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의 눈빛은 ‘여기서 더 소란을 피우면 유준이에게 좋을 게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진은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이끌려 아무도 없는 옥상으로 향했다.
차가운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회색 도시의 빌딩 숲이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이용? 망가뜨린다?”
강도운은 난간에 기댄 채, 장난스러운 투로 그녀의 말을 되물었다.
“아니. 이건 ‘조련’이야, 하진아.”
그는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 뒤에 직함을 붙이지 않고 불렀다. 마치 길들인 애완동물을 부르듯이.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를 생각해봐. 제멋대로 날뛰고,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으려 하지. 불필요한 자존심과 야성으로 가득 차 있어. 하지만 뛰어난 조련사는 그 말의 잠재력을 알아봐.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사용하며, 야성을 다듬고 불필요한 감정들을 완벽하게 통제해서, 오직 주인만을 따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마(名馬)로 재탄생시키지.”
그의 뒤틀린 논리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진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지금 내가 선배에게 하고 있는 게 바로 그거야. 선배의 그 쓸데없는 자존심,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기복, 세상에 대한 불필요한 경계심. 그런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서,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
하진은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눈에는 죄책감이나 미안함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행위에 대한 확신과,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황홀경마저 서려 있었다. 그에게 서하진은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라, 가장 흥미로운 ‘실험체’이자, 자신의 손으로 완성해나가는 ‘피그말리온’이었다.
“봐, 내가 명령하면 선배는 움직이지. 내가 웃으면 선배는 안심하고. 내가 동생 심박수를 살짝 올리면 선배는 완벽하게 복종해. 완벽하지 않아? 이게 진짜 사랑이야. 한쪽이 일방적으로 바치고 희생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통제하는 거. 나는 선배의 모든 것을 알고, 선배는 나의 모든 명령에 반응하고. 이보다 더 완벽한 관계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사랑.
그 단어는 이제 그녀에게 가장 끔찍한 공포의 주문이 되어버렸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영혼을 파괴하고 자아를 해체하여 상대를 완벽한 소유물로 만드는 과정일 뿐이었다.
하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분노도, 슬픔도 아닌, 완벽한 절망의 눈물이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 인간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먹잇감을 사냥하는, 지능 높고 잔인한 포식자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강도운은 그녀의 눈물을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 지금 그 눈물도 아름다워. 나의 통제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그것조차 내가 설계한 감정이니까. 이제 거의 다 왔어, 하진아. 조금만 더 버텨. 그럼 넌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가 될 거야. 오직 나만의, 완벽한 존재가.”
그는 다정한 연인처럼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의 손길이 닿는 피부가, 불에 덴 듯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