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119: 나는 너의 가장 완벽한 지옥
옥상에서의 대화 이후, 하진은 걷는 시체가 되었다. 그녀의 영혼은 회색 도시의 빌딩 숲 아래로 흩어져 버린 것 같았다. 강도운의 ‘조련’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새겨졌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았다. 연구실 안에서도, 그는 하진을 ‘작품’을 감상하는 창조주처럼, 혹은 흥미로운 실험체를 관찰하는 과학자처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하진은 피부가 벗겨지는 듯한 수치심과 무력감을 느꼈다.
어느 날, 그는 하진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언제나처럼,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선배가 보는 세상을, 나도 똑같이 보고 싶어.”
그의 목소리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들렸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안달이 난 연인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려면, 서로
다른 화면을 보고 있어서는 안 돼. 선배가 보는 것, 선베가 읽는 것, 선배가 느끼는 감정의 파동 하나하나를 나도 실시간으로 느끼고 싶어. 그래야 내가 선배를 더 완벽하게 보호하고, 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겠어?”
보호와 이해.
그가 내뱉는 아름다운 단어들은 이제 하진에게 가장 끔찍한 위협으로 들렸다. 그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하진의 모든 디바이스—노트북, 데스크톱 PC, 스마트폰, 태블릿—를 자신의 시스템에 ‘동기화’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선언이었다.
“어떻게…?”
하진은 힘없이 물었다.
“선배가 직접 하는 거야.”
강도운은 한 줄의 코드가 담긴 파일을 그녀에게 건넸다.
“선배의 모든 디바이스에 이 코드를 심어줘. 그럼 우린 연결될 거야. 영원히.”
그것은 잔인한 의식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옭아맬 마지막 족쇄를 채우라는 명령. 그녀가 망설이자, 그는 말없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동생의 심박수 그래프를 보여주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했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떨리는 손으로 그가 건넨 코드를 자신의 시스템에 심었다. 스스로의 요새에, 적군을 위한 비밀 통로를 열어주는 행위. 그녀가 엔터 키를 누르는 순간, 모니터 화면이 잠시 암전되었다가 다시 켜졌다. 모든 것은 이전과 똑같아 보였다. 하지만 하진은 알았다. 이제 이 화면은 더 이상 온전히 그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화면 너머에, 그의 눈이 번뜩이고 있다는 것을.
“이리 와서 봐, 하진아.”
그가 손짓했다.
“우리의 새로운 세계를.”
하진은 홀린 듯 그의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모니터를 보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것은 신의 지휘실(Dashboard)이었다.
거대한 모니터는 여러 개의 창으로 분할되어, 그녀의 세계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화면의 왼쪽 상단에는 그녀의 노트북 웹캠이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넋이 나간 자신의 얼굴이 떠 있었다.
오른쪽 상단에는 방금 전까지 그녀가 보고 있던 바로 그 화면, 그녀 자신의 모니터가 그대로 미러링 되고 있었다.
왼쪽 하단에는 안정적으로 뛰고 있는 동생 유준의 심박수 그래프가 기계적으로 깜박였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에는 그녀의 스마트폰 화면이 실시간으로 떠 있었다. 그녀가 지금 이 순간 메시지를 받거나 인터넷 검색을 한다면, 그 모든 내용이 저 작은 창 안에 고스란히 비춰질 터였다.
그것은 완벽한 통제를 과시하는 하나의 선언문이었다.
그녀의 시선, 그녀의 생각, 그녀의 일, 그녀의 유일한 약점까지. 그녀를 구성하는 모든 데이터가 그의 모니터 안에서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있었다.
“어때? 완벽하지 않아?”
강도운이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속삭였다. 그의 숨결이 닿는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네가 보는 모든 것, 네가 느끼는 모든 감정,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 그 모든 게 이제 내 손안에 있어. 내가 지켜줄게. 완벽하게.”
하진은 거대한 거미줄의 중심에 걸린 한 마리 나비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거미줄은 더욱더 끈질기게 온몸을 옭아매 왔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깨달았다. 이 거미줄은 결코 끊어낼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발버둥 치는 것을 멈췄다.
텅 빈 눈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전시된 그 잔인한 화면을 그저 응시할 뿐이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저항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의 세계는, 완벽하게 그의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