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119: 나는 너의 가장 완벽한 지옥
모든 것이 끝났다.
엔터 키를 누른 손가락은 힘없이 키보드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하진은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초점을 잃고 흐릿하게 번져나갔다. 귀에서는 서버의 백색소음마저 지워버리는 날카로운 이명이 웅웅거렸고, 현실 감각은 아득하게 멀어졌다. 세상과 그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 막이 생긴 것처럼, 모든 것이 그녀를 비껴가는 기분이었다.
그녀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죽어버렸다.
그것은 폭발적인 슬픔이나 타는 듯한 분노와는 다른, 훨씬 더 근원적인 상실감이었다. 뇌의 특정 회로가 물리적으로 끊어져 버린 듯, 그녀는 더 이상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동생의 미래를 제 손으로 파괴했다는 죄책감도, 강도운을 향한 증오도,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절망감도,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모든 감정을 관장하는 서버가 다운되어 버린 것처럼, 그녀의 내면은 완벽하고 공허한 정적에 휩싸였다.
이것은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더 이상 고통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정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감각의 스위치를 내려버린 것이다. 그녀의 뇌는 생존을 위해, 고통스러운 현실과 자신을 분리시키는 ‘해리(Dissociation)’ 상태에 빠져들었다. ‘서하진’이라는 존재를 느끼는 것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녀의 자부심, 그녀의 인간관계, 그녀의 마지막 양심과 사랑. 그 모든 것의 장례식은 그렇게 끝났다. 그녀는 이제 조문객도, 상주도 없는 텅 빈 장례식장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낯선 사람을 마주했다. 눈은 텅 비어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고, 뺨은 핏기 없이 창백했으며, 입술은 생기를 잃고 하얗게 말라 있었다. 강도운의 명령에 따라 웃고 울던 그 기괴한 가면마저 사라진, 완벽한 무(無)의 표정. 영혼이 삭제된 데이터 쪼가리, 생체 신호만 유지하고 있는 빈 껍데기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았지만,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을 씻겨주는 것 같았다. 물방울이 턱을 타고 흘러내려 셔츠를 적셨지만, 축축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오자, 강도운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향해 박수를 쳤다. 소리 없는 박수였다.
“드디어... 완벽해졌어.”
그가 만족스럽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의 눈에 비친 하진은, 더 이상 저항하지도, 고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완벽한 피조물이었다. 그의 조련은 마침내 끝났고, 그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는 승리감에 취해 있었다.
그는 하진이 단순히 굴복했다고 믿었다. 그녀의 영혼이 파괴되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가 죽였다고 생각한 그녀의 영혼이, 사실은 가장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감정이라는 비효율적인 노이즈가 제거된 그녀의 뇌는, 이제 이 지옥의 모든 것을 데이터로 흡수하고 분석하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명료한 슈퍼컴퓨터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기에, 슬픔에 발목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더 이상 분노하지 않았기에, 섣부른 복수심에 일을 그르치지 않을 수 있었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그 어떤 위협 앞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의 승리는, 더 거대한 파멸의 시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승리에 취해, 그 모든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하진의 텅 빈 눈동자 속에서, 새로운 신이 조용히 눈을 뜨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자신이 창조했다고 믿는 그 완벽한 인형이, 이제 자신의 창조주를 심판할 칼날을 벼리기 시작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