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오이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렴.”
여느 때와 같이 엄마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게 엄마와 마지막 작별일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니지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면 항상 징조가 보입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접시가 깨진다거나 평상시에 잘 있던 꽃병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어제까지 잘 묶었던 신발끈이 끊어진다거나 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를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오늘은 날씨도 화창하고 밖에서는 새들이 더욱 또롱하게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어젯밤 잠도 푹자서 몸도 개운한 그런 좋은 날이었습니다.
“드르륵”
국어 선생님 수업이 끝나기 전인데 갑자기 담임 선생님께서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 죄송한데, 오이좀 데리고 나갈 수 있을까요?”
“아, 네. 그렇게 하세요.”
“오이야, 선생님이랑 잠깐 교무실로 내려가자.”
담임 선생님의 갑작스런 등장에 교실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나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왠지 모를 무거운 단어들이 친구들의 관심을 부추깁니다. 그 순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일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늘은 몸도 마음도 개운한 그런 좋은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선생님은 왜 나를 부르시지’
담임 선생님과 함께 교무실로 내려가는 길에 계속 생각해 보았지만 잘못한 일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교무실로 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은 더욱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오이야, 지금 가방 싸서 외삼촌 집으로 가보렴.”
“외삼촌 집이요?”
선생님은 왠지 모를 서글픈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합니다. 선생님의 눈빛에 무언가 심상찮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교실에 찾아와서 나를 부른 일, 무언가 잘못 했다면 내게 화를 낼텐데, 오히려 아무말 없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무실로 향하는 선생님의 뒷모습, 학교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가방을 싸서 외삼촌 집으로 가라고 하는 일, 평소에는 한 번도 내게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사람은 갑작스런 일이 닥치면 몸이 굳고 생각도 굳는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갑작스런 행동과 말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온갖 의문들로 가득했지만 이미 내 머릿속 생각은 굳어진 상태입니다. 몸은 단지 선생님이 시킨대로 움직이고만 있을 뿐입니다.
“오이야, 여기 택시비 있으니까 이 돈으로 외삼촌 집으로 가렴.”
선생님은 학교 앞에서 손수 택시를 잡아주고 내게 차비를 주십니다. 그렇게 선생님을 뒤로한 채 택시는 외삼촌 집으로 향합니다. 택시 안은 정적함과 풀리지 않는 의무들로 가득합니다.
‘둘 중 하나야. 외할머니 아니면, 엄마’
좌석에 기대어 한동안 눈만 껌뻑입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나 굳어버린 머리는 이제야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 중 하나였습니다. 둘 중 하나가 아니면 갑자기 짐을 싸서 급하게 학교를 나올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 중 하나가 아니면 선생님께서 슬픈 목소리로 나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 중 하나가 아니면 이렇게 마음이 슬프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내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답을 알지만 그 답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에 마음은 송곳으로 찔린 것처럼 아파옵니다.
머릿속 복잡해진 생각의 실타리를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던 중 어는덧 택시는 외삼촌 집에 도착합니다. 마치 생각이 없는 기계처럼 몸은 움직이는 순서에 따라 외삼촌 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저 멀리서 울고 있는 외할머니가 보입니다.
외할머니는 소리 내어 울고 계십니다. 방바닥을 치며 누구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습니다. 듣고 싶지 않은 그 이름이 외할머니 입에서 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싶습니다.
내가 그토록 원하지 않던 그 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도 가끔 시험지 답을 잘못 채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답안지를 확인한 학생이 이의를 제기하면 다시 확인한 후에 맞다고 고쳐주십니다.
‘오늘 일도 무언가 채점이 잘못 되어진 거야. 맞아. 선생님들도 가끔씩 채점을 잘 못 하기도 하잖아. 아니야, 아닐거야. 엄마가 아닐거야.’
머릿속은 이런 외침들로 가득했지만 눈앞에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눈물 가득한 외할머니의 얼굴, 그분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내가 아는 그 이름, 답은 분명해졌습니다. 외할머니는 아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