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처럼 되면 싫을까

by 재서기
어렸을 땐 타이틀 일러스트 속 제갈량이 강시처럼 창백해서 괴이했었다.

<삼국지 공명전>이란 고전 명작 게임이 있다. 삼국지연의의 명군사, 제갈량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대체역사를 만들어가는 전략 시뮬레이션인데, 게임 중간중간 제갈량의 아내 황씨가 아들 제갈첨이 어떻게 컸으면 좋겠냐고 묻는 선택지가 나온다. 선황 유비 같은 인물, 용맹한 조운 같은 장군… 이런 일종의 롤모델을 정해주는 건데, 이 선택에 따라 후반에 참전하는 제갈첨의 능력치가 달라진다.


실제 제갈첨의 장래희망이나 제갈량의 양육 스타일에 대해선 알 도리가 없지만 (제갈량의 편지글 중에 제갈첨이 너무 똑똑해서 오히려 웃자랄까 걱정이라는 아들 자랑 대목이 있긴 하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아버지 제갈량 같은 사람’이란 선택지를 골랐을 거다. 왜냐하면 그렇게 키운 제갈첨은 제갈량에 버금가는 지력을 자랑하는 사기캐가 되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게임 밸런스 때문에 제갈량 같은 군사들보다 잘 때리고 잘 피하는 조운, 장억 같은 무장이 더 셌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지금 보니까 진짜 성공한 아빠의 자신감 넘치는 대사였다.

근데 막상 내가 아빠가 되어 아들을 바라보면서 ‘이놈은 커서 뭐가 될까’ 생각했을 때, 사진 속 제갈량처럼 ‘간지 터지는’ 대사를 읊조리긴커녕, ‘나처럼 되면 안 되는데…’란 생각이 드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아직 자기 이름도 깨작깨작 쓰기 바쁜 아이지만 가끔 감성 돋는 표현을 할 때, 이게 유전인가 싶다가도 이내 ‘글은 쓰지 마라’ 하게 되는 거다.


구글 두들에 등장한 아빠 뒤마

그래도 알렉상드르 뒤마 부자 (아빠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썼고, 아들은 <춘희>를 쓴 작가다)가 서로의 작품과 집필 스타일을 놓고 나눴다는 만담은 참 부럽더라.


“네가 문장 한 줄을 쓰는 동안 나는 책 한 권을 완성시킬 수 있다.” (아빠 뒤마)

“아버지가 쓰신 책 한 권을 저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아들 뒤마)


사족 1: 사실 저 만담은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 두 부자 작가의 집필 방식 차이 때문에 생겨난 유머일 확률이 크다.

사족 2: 상업 작가로서는 아빠 뒤마 스타일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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